<백 엄마2>

삶으로 보여준 권위

by 뇽뇽

권위의식이 아닌 진짜 권위를 가졌던 나의 엄마.


사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야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처럼, 나 또한 엄마의 부재를 겪은 후에야 그 훌륭함과 위대함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우리엄마는 이런 사람이었다.


내 아가 유아기록부에는 내가 첫 걸음마 한 날, 엄마라고 처음 부른 날, 혼자 앉은 날, 처음 뒤집은 날의 모든 날짜가 적혀있다. 돌도 안된 자신의 행동기록을 알고 있는 나같이 복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의 1-6학년때까지의 모든 일기도 간직해준 덕분에 성인인 지금도 초딩시절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엄마는 늘 교회에서 교사로 헌신했고, 초5학년때는 우리반 담임 선생님이었다. 안으로 굽는 팔이 당연하겠지만, 엄마는 한번도 나와 친구를 어느 쪽으로도 편애하지 않았다. 늘 유쾌하게 나와 친구들을 대해주며, 분식집 사장님 솜씨다운 실력으로 맛있는 음식도 자주 만들어줬다.

교회에서 노년 권사님들 성경책 찾아드리기, 성가대 엘토파트, 교사 등으로 열심이었다. 교회에서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좋고 나쁜 이야기들을 알게되기 마련인데, 자식인 내게 덕이 되지 않을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대화 가운데서도 그 부분만큼은 침묵으로 날 지켜줬다.


고3. 입시준비로 매일 밤 9시부터 새벽 1,2시까지 교회에서 악기 연습을 했다. 내가 연습하는 내내 옆에서 엄마는 성경을 쓰면서 수고하는 딸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그 시간을 함께 채워주었다.


한 동네에서만 이사를 8번 넘게 해야했던 우리가족이 드디어 해가 들어오는 지상의 집으로 올라와 자리잡은 마지막 공간은 기도의 응답으로 얻게 된 임대주택이었다. 엄마는 여름이면 보양식 삼계탕을 만들어 지하에 혼자 거주하시는 할머님께 대접하였고, 겨울이면 눈쌓인 골목길을 쓸어주시는 청소부께 따듯한 차를 대접했다. 여름과 겨울. 이 모든 시간속에 나는 엄마를 진심으로 존경했고 사랑했다.

그리고, 우리엄마는 내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 늘 사랑해줬다. 커서보니 부모라하여 다 그렇지 않음을 안다.


그러나, 우리 엄마에게도 대단히 무서운 부분이 있었다.

옳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분명하게 가르쳐야 겠다는 고집과 결단이다.


나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다. 모든 말에 순종하고 말 잘듣던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서 깻잎머리에 화장품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고, 엄마가 학교에 불려가는 일들이 생겼다.

엄마는 내게 거짓말은 하면 안되는 거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얘기했지만, 내 귀는 그 못을 엄마의 가슴으로 튕겨내버렸다.

난 또 거짓말을 했고, 저녁시간에 속옷만 입혀 집 대문으로 내쫒혔다.(지금은 아동학대로 신고될 일이지만)

이후에도 옷걸이 플라스틱으로 다리를 맞아가며 계속 거짓말을 해댔다.

이런 체벌이 있음에도 내 마음에 상처가 남지 않은 것은, 그녀의 분명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흥분해서 감정으로 때리지 않기. 잘못만큼 매 횟수를 내가 정하게 했고, 매질 후에는 마데카솔로 문질러주며 잘 때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잘못은 알려주되 변함없이 날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 덕분이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정신을 못 차리고 거짓말의 연속일 때 엄마는 최후의 방법으로 자신의 바지를 걷었다.

나를 잘못키운 자신의 잘못이라며 매를 내 손에 쥐였다. 엄마의 종아리 앞에 난 눈물로 바닥에 엎드렸다.

"때려" 엄마의 눈물 섞인 외침에 오열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종아리에 자국을 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내용으로 거짓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에 남는건 엄마의 질문을 통해 겉잡을 수 없이 눈덩이같이 불어난 거짓말 앞에서의 막막함과 두려움 뿐이다. 그렇게 온 몸으로 배웠으니 내 평생 거짓말 없는 인생을 살고있나 자문해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엄마의 교육이 없었으면 난 대체 얼만큼의 거짓말 인생을 살고 있을거였단 말인가.


나도 결혼을 하고, 많은 어른들을 만나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백엄마를 자주 떠올리고 생각하게 된다. 내게 엄마는 친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말할 수 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럼에도 결코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는 진짜 권위를 가진 멋진 어른이었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 듯이, 나도 교회에서 권사님들 성경 찾아드리고, 엘토로 찬송부르며, 나도 모르게 엄마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처럼 상대방을 지켜주기 위해 고요하게 침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침묵의 대단함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 나이가 많아질수록 너무 빨리 천국에 가버린 엄마의 짧은 인생이 실감되어 안타깝기만하다.

그래도 우주같은 존재의 부모. 특히 엄마의 존재가 내게 백 엄마였다는 게 나에겐 감사이며,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 이 감사함은 과거로 끝나지 않고 지금도 -ing로 지속된다.

이제는 사진을 봐도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나의 엄마지만, 오늘도 내 마음속에서 뜨거운 사랑으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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