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 , 100
우리엄마는 백씨다.
믿음, 사랑이 이름에 다 들어가있는 순수하고 착한 사람.
천국으로 떠난 지 15년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에서 한번도 사라진 적 없는 그녀와의 시간을 마음속에서 끄집어내어 추억하려 한다.
단정히 양갈래 땋은 머리의 교복입은 고등학생 소녀. 시골에서의 어려운 형편으로 서울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목사님의 수양딸이 되어,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열심히 공부하며 성실한 학창시절을 보낸다.
꽃피는 예쁜 소녀를 좋아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감명깊은 구절을 자로 반듯하게 줄 그은 책을 선물해주는 이 로맨틱한 군인과의 연애를 모두가 바랬다. 그녀만 빼고. 비록 내가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라도 나 또한 이들의 연애를 응원하는 바이다.
정작 이 소녀가 좋아해서 결혼한 남자는 정반대의 남자였다.
대형교사 권사님의 아들인 이 남자는, 하루에 7-8시간씩 피아노에 빠져 연습하는 또 다른 로맨틱한 사람이었다.
한 평생 이 사람때문에 마음아프고 고생한 엄마에게 나의 존재밖에 위로를 줄 수 없었음이 같은 여자로써 안쓰럽고 마음 아프기만 하다.
그녀의 아빠와 오빠처럼 세상 모든 남자들이 술,담배 하지않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줄 알았다는 엄마의 하얀 세상속에 등장한 이 남자로 흰눈같이 희기만 하던 그녀의 세상은 탁해지고 거뭇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어두운 세상은 상처, 술, 담배, 여자로 가득한, 모든 것을 검게 만드는 아픔 가득한 곳이었다.
빛과 어둠이 만나면 어둠이 사라지고 빛만 남게되는 것과는 달리, 빛이 아닌 작은 인간인 우리의 삶은 흑의 존재를 삼켜버릴 색이 없다. 흑이 존재감을 나타내듯, 그녀의 삶에 검은 멍이 도장같이 하나 둘 찍혔다.
그녀의 흰 세상 전부를 채운 건 하나님,신앙이었다.
찬양대 엘토, 학생부 교사, 성경필사 등으로 매사에 열심을 갖고 신앙생활하는 그녀의 눈에 비친 아빠의 삶은 한숨만 나오는 인생이었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덕분에 그녀는 성격에 맞지도 않는 분식집, 미용실, 속옷가게로 끊임없이 장사를 해야했다.
그녀의 열심인 믿음 속에는 기독교인이라면 무조건 좋은사람으로 인식하고, 기독교라면 무조건적인 표를 행사하고, 의료진 확인도 전 좋은 병원이라 믿어 버리는 맹신이 담겨있었다. 그를 향한 바늘처럼 뾰족한 그녀의 한숨은 더욱 깊어져갔고, 그녀의 한숨만큼 아빠의 검은 인생에도 보이지 않는 멍자국이 늘어갔다.
상처가 깊어진 부부는 만나기만 하면 싸우기 시작했다. 고성이 난무하고, 분에 못이긴 아빠가 도구를 찾을때면 "아빠 제발 제발.." 그들 사이에서 멍투성이가 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는데, 완전하지 못한 가정의 모습이 가장 안전한 시간이었다.
유별나게 심한 사춘기를 보낸 딸의 중,고등학생 시절을 함께하지 않은 아빠. 밖에서 보낸 그의 시간 안에 엄마와 딸은 없었다.
딸의 극히 일부분인 아빠의 존재와는 달리, 삶의 전부인 남편의 부재는 상상할 수 없다.
자식만 보고 삶을 견뎌낸 어른신들처럼, 나의 엄마도 하나있는 자식 바라보고 살아갔는데, 나 또한 심한 사춘기로 그녀를 아프고 힘들게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때의 시간들을 사과했다. 그나마라도 다행이다.
엄마는 내게 "물려줄 수 있는게 믿음밖에 없다"라고 자주 얘기했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그 믿음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스스로 믿음이 좋다 말하는 게 교만 아니냐며 그 말을 마음으로 정죄한 적도 있었다. 진짜 교만이 뭔지도 모른채.
그 말은 교만이 아닌, 미안함, 마지막 자존감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견디기 힘든 삶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은 것, 보이는 좋은 것 하나 줄 수 없는 엄마의 미안함.
그럼에도 인생 가장 중요한 진리를 발견한 기쁨. 그 모든게 함축된 말이었다.
엄마의 맹목적인 신앙의 이유를 이제 조금은 이해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기쁨과 위로가 되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
엄마. 이제 생각하면 정말 그래.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진정한 기쁨을 발견한 엄마의 삶을 통해 난 인생 가장 귀하고 값진 유산을 상속받았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