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사랑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삶의 많은 이야기, 재정, 여러 가지 환경들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글을 통해서 한 명이라도 위로하고 안아주는 도구로 쓰임 받는다면, 그동안의 아픔과 슬픔은 보석같이 아름다운 삶이 되는 거겠죠?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취미가 독서였지만, 있어 보이는 척하는 것 같아 중학교 이후로는 음악감상으로 취미를 바꿔 적었던 나. 내 인생 마흔이 되어 다시 책과 글로 돌아왔다.
나도 이제야 데미안처럼 알에서 깨져 나온 것 같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작년에 읽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한 문장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 ‘지금 저 사람이 피를 흘려서 얼마나 아플까?’ 그건 자기가 아픈 거야. 자기 마음이 아픈 거지. 우리는 영원히 타인을 모르는 거야. 안다고 착각할 뿐. 내가 어머니를 아무리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엷은 막이 있어. 절대로 어머니는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어머니가 될 수 없어. 목숨보다 더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의 고통은 별개라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쳐진 얇은 막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선을 떨지. ‘내가 너일 수 있는 것 처럼’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122p
오프라인 독서토론을 위해 읽었던 책이었다. 이 부분에 감동을 받은 건 나 혼자였던 것 같다.
차갑고 냉정하게 느껴지는 저 내용이 나를 인정하게 했다. 타인이 나의 슬픔을, 나 또한 타인의 아픔을 다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나의 상실감을 타인으로 채울 수 없다’라는 간단한 한 문장을 삶으로 인정했고 받아들였다.
상실감이 찾아와 우울해질 때마다 책을 집어 들었다. 그 해에 거의 80권의 책을 읽은 것을 보고, 나의 상실감이 꽤 자주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독서 습관이 루틴이 되었다. 왕복 3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지겹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한 후 새로운 삶이 찾아왔는데, 글쓰기를 시작하니 이젠 정말 신세계가 열린 듯하다. 왜 인간의 삶이 장성해야 8-90년 일까, 참 아쉽기만 하다. 유한한 짧은 인생을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기만도 충분하다.
사실 오늘도 사무실에서 짜증 나는 상황이 있었지만, 짧은 인생 생각하며 그 순간의 화를 빨리 가라앉히고 웃는 쪽을 선택했다. 물론, 가식의 웃음은 아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행복하기로 다짐했다. 짜증 나는 상황이 다가와도 그 화를 빨리 훌훌 털어내 버리기로.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결과물이다. 죽음 앞에서 후회 남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 난 이러한 결정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가끔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하고 있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힘듬이 있기에 내게 독서, 글쓰기의 시간이 더 달콤하고 완벽하게 힐링의 시간이 되는 것일 것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 밝고 환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독서와 글쓰기. 이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 것에 매우 행복하다. 어렸을 때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가도, 이제라도 깨달아 앞으로의 삶을 기대하게 된 것에 만족과 감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