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감사의 제목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살전5:16-18
특히 20대 때 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자주했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것인가요? 저것인가요? .
왼쪽인가요 오른쪽인가요?(정치적으로 말고)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이거 아니면 저거중에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한창 구할 때 내게 주신 말씀은 너무나도 유명한 저 위 성경구절이었다.
살아가는 현실은 고단하고 힘들지만, 기뻐하고 기도하며 늘 감사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깨닳은 후 늘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려 노력했지만, 그 또한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 근원의 원천이 내가 아니어야 하는 것이다.
꼭 크리스쳔이 아니어도 삶에 늘 감사를 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자연과 동물과 식물에게 미안함과 감사를 표하며 늘 식탁을 대하는 분들도 있다. 귀한 마음이다. 모든 상황속에서 감사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 좋은 마인드다. 반면교사 삼아 배울 수도 있기에 그 모든 환경은 내게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조금 견디기 힘든 감사의 내용이 있다.
교회 강단에서 목사님을 통해 듣게되는 감사에 관한 설교이다. 특히, 5월이나 감사의 절기에.
우리에게 건강 주심을 감사하자. 해외 다른 나라에 결식 아동들을 보며..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이렇게 건강함을 감사하자.
우리에게 장애없이 사지멀쩡하게 살아있음을 감사하자. 우리에게 부모를 주시고, 자녀를 주신 그분께 감사하자. 이런 내용들이다. 사실 틀린 말 하나없다. 그러나 그 설교를 듣는 자리에 우리 아빠같은 장애인 성도가 왔을 경우. 부모가 안계시고, 자녀도 없는 나같은 사람이 이런 내용을 들을때의 느낄 상실의 슬픔은 헤아리지 못하시는 걸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진짜 감사의 고백은 도대체 무엇인건가?
물론, 나의 특별한 상황때문에 한마디 문장에도 날서게 생각되는 거라 생각한다.
상실의 슬픔과 그 깊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이고,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기때문이다. 나또한 타인의 그 아픔의 깊이를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절대적 감사는 이거 하나 아닐까?
[십자가의 보혈로써 주의 크신사랑 알게하셨네. 주님께 감사하리라 언제나 주님께 감사해]
나같이 작고 연약한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시 오실 예수님. 그 예수님이 나의 주인되시며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 그 기대와 소망으로 살아가는 기쁨으로 터져나오는 감사.
상황, 상대적 우월감으로 느끼는 감사는 언젠간 반드시 절망감으로 돌아와 나의 작음과 없음을 불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를 비난 할 생각없다. 우리가 마땅히 감사의 고백을 드려야 함이 맞다. 다만 십자가 외에 감사의 조건은 누군가에게 아픔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한두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마음의 벼가 조금씩 고개를 숙여간다. 내가 경험한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상대가 겪었을 삶을 내가 다 알지 못하기에 말을 많이하는게 두려워지기도 한다. 말보다 미소와 따듯한 손으로 위로받았던 나의 경험을 생각해보며..
또래 친구들과는 반대의 시간으로 흘러가는 나의 삶이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많이 울었다. 이제는 그 버겁고 힘든 시간이 내게 너무 유익한 시간이었음을 안다. 냉정하고 남에게 관심없고 차가웠던 내가 이제는 장애인을 보면 우리 아빠같고, 암투병 하는 어른을 보면 엄마같고, 아픈 부모를 돌봐야 하는 자녀를 보면, 난임부부를 보면, 방황하는 청소년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고 약한 자들의 삶에서 나와 우리 가족이 보여 함께 눈물 흘리는 내가 되었다. 깎이고 깎인 나의 삶과 마음이 아프지만 지금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죽는다고 해도 천국가니 그 또한 좋은거고.(그래도 오래살고 싶다.)
"삶의 모든 순간을 풍성하게 감사하자. 그러나 그걸 꼭 떠들썩하게 하지 않아도 좋아. 주님은 중심을 보시니까. 그 풍성함을 고요하게 감사하자! 남들이 아프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