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절대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이를 지우지 않겠다고 했을 때 자신은 양육비고 뭐고 도와줄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알아서 하라던, 십 년 치 정을 한 순간에 떨어지게 한 그 사람에게 내가 소중하게 빚고 깎고 닦은 내 보물 같은 아이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수빈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를 통해 그 사람이 아이를 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우리 잊고 잘 살라고 전해달라고 했던 나였다.
그렇기에 수빈이를 만나보지 않겠냐고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연락한다는 건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수백 번을 고민했다. 수천날을 고민했다.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도 계속된 고민이었다.
수빈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아이의 원망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아이에게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깟 자존심 때문에, 꼴랑 미움 때문에, 가끔 죽여버리고도 싶었던 정도의 증오 때문에 내 선에서 친부와의 만남의 기회조차 잘라내는 것이 아이에게 정당한 일인지 묻고 또 물었다.
나는 그저 아이에게 당당하고 싶었다.
'엄마는 너와 아빠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아빠가 너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 기회를 망치는 것은, 혹은 망치지 않는 것은 이제 내 몫은 아니었다.
'수빈이가 요즘 부쩍 아빠를 궁금해해. 혹시 만나볼 생각 있어?' 수십 번을 고쳐 쓴 문자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