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데 오늘 못 만날 거 같아."
불과 한 시간 전이었다. 아이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 한 시간을 앞두고 전 남편은 카톡으로, 전화도 아닌 카톡으로, 말했다.
"오늘 수빈이 만나기로 한 걸 부모님과 여자친구가 아는 바람에 난리가 났어. 나도 힘들어. 오늘은 어려울 것 같다."
수빈이는 아빠를 만나러 갈 때 입겠다며 며칠 전부터 골라둔 옷을 입고 막 나갈 준비를 마친 참이었다. 전 날 밤, 내일 아빠를 만날 생각에 너무 설렌다며 아빠를 만나서 할 일들을 나열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며 눈물이 차올랐다. 미리 좀 말해주지. 적어도 아빠를 만날 생각의 설렘이 고조에 달한 지금은 아니지. 어제라도 말해주지.
'오늘은'? 내일 다시 출국인 사람이 '오늘은' 어렵다니, 그럼 언제 만나겠다는 걸까.
업보이겠거니 했다. 이혼의 위기에서도 미련하게 아이를 가진 나의 업보. 이혼을 하면서도 기어코 아이를 낳아 혼자 키우겠다고 고집부린 나의 업보.
그런 나의 업보 때문에 내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
"오빠가 전화로 직접 얘기해. 수빈이가 며칠 전부터 얼마나 신나 있었는지 아는데... 나는 도저히 말할 자신이 없어."
걸려온 전화를 아이에게 넘겨줬다. "아빠가 수빈이한테 할 말이 있대."
눈치 빠른 아이는 이미 내 말투와 표정에서 아빠가 할 그 말이 무엇인지를 짐작한 듯했다.
핸드폰 너머 아빠의 목소리를 듣던 아이의 눈빛에 아주 잠깐동안 어렸던 실망이 순식간에 어색한 수긍으로 바뀌었다.
"네."
다음에 한국 오면 꼭 만나자는 아빠의 말에 여섯 살 꼬맹이가 달리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 떼써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빠의 목소리에서, 엄마의 울먹거리는 표정에서 이미 눈치챈 지 오래다.
아이 앞에서는 웬만해서는 울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아이는 그런 나를 꼭 안아준다. "엄마 나 괜찮아. 슬퍼하지 마."
아이를 실망시킨 것이 마음이 아파서, 보고 싶은 아빠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아이가 불쌍해서, 충분히 슬퍼해도 되는데 질질 짜는 엄마를 먼저 달래는 그 마음이 안쓰러워서 눈이 벌게지도록 엉엉 운다.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것이 결국은 나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