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이는 아빠는 없지만 수빈이를 많이 사랑해 주는 엄마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어' 정도로 아빠의 존재를 뭉뚱그려 포장할 생각이었다.
포장이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수빈이는 아빠는 없지만) 수빈이를 많이 사랑해 주는 엄마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어' 정도로 읽지 않아도 그만인 괄호 안의 수식어 취급하여 넘길 생각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신호가 약해져 못 듣게 되는 통화 말미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인사말 정도로 취급해 주길 바랐다.
그러다 아이가 중학생 정도가 되면 그때 '사실 엄마, 아빠는 이혼을 했어'라든가 '아빠는 멀리 살아서 만날 수가 없어' 등으로 설명해 주면 되겠거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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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트인 아이는 무엇보다 아빠에 대해 궁금해했다.
마치 말을 못 하고 있던 생후 2년 남짓한 시기 동안 오직 아빠의 존재만이 너무 궁금했던 사람처럼 집요하게 궁금해했다.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이때다, 싶어 하며 그동안 물어보고 싶어도 입과 혀가 도와주지 않아 물어보지 못했던 아빠에 대한 질문 보따리를 무장해제하듯 쏟아냈다.
그 질문들은 꼭 10월이면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열매 같아서, 밟고 싶지 않아도 한 눈 팔다 보면 밟기 십상이라 도무지 피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었다.
친구들은 다 아빠가 있다 (아니 적어도 있는 듯했다). 엄마도 아빠가 있고, 할머니도 할머니의 아빠가 있다.
그러니 자신의 아빠는 어디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였다.
'아빠는 없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시기가 오는 것은 너무 마땅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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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죽었다고 둘러댔어도 될 일이었겠지만 아이를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또 있는 그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0년 가까이 연애하고 결혼식도 올리고 신혼살림도 차리고 아이도 가졌지만, 그럼에도 반대하는 시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도리가 없어 결국 혼인신고도 못하고 임신 20주 차에 갈라서게 됐다고. 그렇게 말해서 아이가 만나본 적도 없는 친할머니에 대한 미움부터 갖게 하고 싶진 않았다.
누군가는 별 희한한 성인군자 콤플렉스라고 할지언정, 나는 그랬다. 친할머니에 대한 미움이든, 아빠에 대한 미움이든 그건 아이가 커서 스스로 그들을 판단한 뒤 가질 마음 이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밭 갈기를 끝낸 그 순수한 마음에 내 손으로 미움을 심어주는 것은 아이의 자유를 빼앗는 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