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0
희미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이 떠진다. 오른손을 더듬어 머리맡 어딘가에 둔 핸드폰을 찾는다. 우선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아본다.
06:45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이제는 진짜 일어나야 하는데.
06:55
웬만해선 떼어지지 않는 '괴물 같은 접착력'의 몬스터겔 마냥 침대와 한 몸이 된 내 머리를, 그다음엔 상체를, 그리고는 다리를, 마지막으로는 엉덩이를 서서히 조금씩 떼내며 일어난다.
정수기로 가 물부터 한 잔 마신다. 어제저녁 설거지거리가 싱크대에서 나를 째려보고 있지만 우선은 무시한다.
07:00
무거운 다리를 끌고 책상 앞으로 가 노트북을 연다. '아, 하기 싫어.' 오늘 오전 중으로 납품해야 되는 작업이고, 주말새 끝내두려 했지만 아직 20% 정도가 남았다.
08:00
아이방 알람시계가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계속 울린다. 못 듣는 건지, 끄러 일어나기가 귀찮은 건지 알람이 계속 울린다.
아이방으로 가 알람을 끄고 엉덩이를 토닥인다. "아가씨, 일어나셔야죠. 여덟 시예요."
아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는 크게 숨을 들이쉰다. 버텨온 삶의 무게가 고작 7년이라 살냄새에는 순수함과 사랑과 안정이 배어있다. 몸속 세로토닌 수치가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08:05
다시 책상에 앉는다. 십오 분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08:20
메일로 파일을 전송하고 주방으로 간다. 주말에는 좋아하는 시리얼을 먹게 허락해 주지만, 주중 아침은 보통 아이가 싫어하는 계란이나 사워도우빵으로 차린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먹고 등교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이가 알아줄 리가 없다.
08:25
씻고 옷을 입은 아이가 식탁에 앉았다. 역시나 먹기 싫다는 표정으로 삶을 계란을 한 입 베어 문다. 그다음엔 버터 바른 빵 한 입.
"그래도 이 달걀은 자연방목한 닭이 낳은 달걀이래. 그래서 그런지 더 맛있는 거 같지 않아? 엄마가 먹어보니까 짭조름한 맛도 있는 것 같고, 일반 달걀보다 훨씬 맛있는 거 같아."
싫어하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목소리를 한 톤 높이고 눈을 맞춘다.
아침을 먹는 동안 나는 아이 머리를 빗고, 묶거나 핀을 꽂아준다. 1-2분이면 될 일을, 고개를 하염없이 움직여대는 초등학교 1학년 상대로 하려니 5분도 더 걸린다. 머리카락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계속 내 손에서 미끄러진다.
08:35
이제 나가야 하는데, 그릇엔 아직 차려준 아침이 반절 가까이 남았다.
'조금 빨리 먹어야 될 것 같은데? 5분 안에 나가야 해!' 오늘도 나는 아이를 재촉하는구나.
08:37
아뿔싸, 학교에 가져갈 물병을 씻어두는걸 깜박했다. 부리나케 고무장갑을 끼고 물병을 닦는다. 손은 세제 묻은 물병을 헹구느라 바쁘고, 입으로는 아이를 재촉한다. '이제 물 마시고 신발 신어~'
08:50
'사랑해, 잘 갔다 와!' 볼에 뽀뽀를 하고 학교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아이 뒤통수를 본다.
09:00
소파에서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자세를 하고 하염없이 쇼츠를 넘긴다. 친구들과의 단체 카톡방에서는 오늘도 여지없이 밥벌이해야 하는 신세를 안타까워하는 대화가 오간다.
09:15
아, 일어나야지. 원두를 갈고 커피부터 내린다. 아이 등교 후 커피 내리는 이 시간의 적막이 좋다. 아이의 수다스러운 목소리와 넘치는 에너지가 빠지고난 집이 커피 냄새와 내 발소리만으로 가득 차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올리브 오일을 발라 사워도우를 굽는다.
09:20
블루베리 한 움큼과 모타델라 햄을 곁들여 식탁에 앉는다. 우선 커피부터 한 모금 마신다.
09:40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동안, 아침 먹은 자리를 치우고 청소기도 한 번 돌린다. 겨우 여자 둘이 사는 집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여자 둘이 사는 집이라 바닥에 뒹구는 머리카락 양이 어마어마하다. 하루라도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엄마 말마따나 뱀밭이 된다.
09:45
이제 싱크대에는 어제저녁 설거지거리에 오늘 아침 설거지거리까지 쌓여있다. 계속 모른척했다가는 오늘 저녁의 내가 후회할게 분명하다.
10:30
설거지 후 샤워를 하고 나와 건조기 안 빨래를 꺼내 소파에 산을 만든다. 빨래는 하는 것보다 개서 넣는 과정이 고역이다.
13:00
두 시간 정도 작업을 하다 슬슬 배가 고파와 배달앱을 켰다 곧 닫는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는데,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에 돈을 쓰려니 아깝다. 마침 냉장고에 숨 죽어 가는 채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게 생각난다.
13:20
며칠 전 사둔 야끼소바 소스가 있어 면을 삶고 양배추와 당근을 볶아 야끼소바를 만들었다. 하마터면 버릴뻔한 채소를 사용해서 다행이다. 점심은 혼자 먹더라도 잘, 골고루, 알록달록하게 먹으려고 한다. 내 나름대로 나를 아껴주는 방법이다.
14:00
점심을 마시듯 입에 털어 넣고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아직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있다.
15:00
아이를 데리러 갈 채비를 한다. 현관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부르려다 버리려고 모아둔 재활용거리가 생각나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종이, 플라스틱, 캔 등으로 분류해 둔 재활용품을 양손 가득 들고 피가 통하지 않는 손가락 하나로 겨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15:30
잠시 후 학원에 가야 하는 아이를 위해 간식을 준비한다. 떡을 좋아하는 아이는 특히 절편과 가래떡이면 사족을 못 쓴다. 가래떡을 기름 살짝 두른 프라이팬에 앞뒤로 구워 꿀과 같이 주면 '우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래떡~ 내가 다 먹어도 되는 거야?'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짓는다.
16:30
아이를 학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올라와 저녁 준비를 한다. 아, 그전에 아침에 설거지해 둔 그릇을 제자리에 넣어야지. 밥을 안치고 돼지고기를 꺼낸다. 양파와 대파를 손질한다.
18:10
저녁 준비를 대충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일층으로 내려간다. 조금 기다리다 보면 아이가 버스에서 내린다.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오늘은 학원에서 즐거웠나 보다. 어떤 날은 학원 가기 싫다고 투정인데, 오늘은 그날은 아닌가 보다. 그네 십 분만 타고 올라가면 안 되냐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아이 학원 가방을 들고 기다린다.
나를 닮아 겁이 많아 그네가 조금만 높이 올라가도 무섭다고 난리다. 뭐든 신중하고 느리게 배우는 편이라 또래들은 그네 위에 올라서서도 잘도 타던데 아직 그런 건 하지 못한다. 언젠가는 하겠지, 생각한다. 못하더라도 상관없지.
18:30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저녁 메뉴인 수육이 아주 마음에 드나 보다. 원래는 식사 시간에 꼭 한 번은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게 되는데, 오늘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그런지 나와 비슷한 속도로 먹는다.
누군가 봤더라면 외로워 보일 수도 있는 둘 뿐인 저녁 식탁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오늘 쉬는 시간에는 누구랑 놀았어?" "급식은 뭐 나왔어?" "그래도 남기지 말고 골고루 먹지." "다음 주 현장체험학습 간다던데, 신나겠다."
어떤 날은 벌써 사춘기가 왔나 싶게 두 세 글자 이상인 대답을 듣기가 힘든가 하면, 어떤 날은 자기가 더 신나 조잘조잘 끊임없이 얘기하느라 밥 먹는 건 뒷전이 된다.
19:30
저녁 준비하느라 어질러진 주방을 내가 정리하는 동안 아이는 숙제를 한다. 아직 저학년이라 숙제라고 해봤자 한 줄 독후감이나 일기 정도가 다지만.
20:00
여덟 시가 되면 늘 저녁 산책을 나가는데, 아이와 나의 식후 리츄얼인 셈이다. 갑자기 일감이 몰려 저녁도 배달 음식으로 때워야 할 정도로 바쁜 시기를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이 시간은 산책 시간으로 비워둔다.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그네를 타기도 하고, 그림자밟기 놀이나 스무고개를 하기도 한다. 주로 아이가 문제를 내고 내가 답을 맞히는 식인데, 초등학교 1학년이 내는 스무고개 문제는 30년을 더 산 나에게는 터무니없이 쉬울 때가 많아서, 그럴 때는 빨리 맞추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같은 가을에는 그저 길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나 송충이를 밟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어? 16초? 건널까? 건널 수 있겠어? 건너자!"
횡단보도 초록불이 깜박이기 시작해서 아이 손을 잡고 조금 전 먹은 저녁이 얹힐 것 같이 뛴다.
너무 작아 내 손에서 빠지기 일쑤이던 손은 이제 제법 잡을 맛이 난다.
"아이 뭐야! 진작 말해주지! 안될 것 같아, 엄마! 안돼! 더 빨리!"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입꼬리는 곧 귀에 닿을 듯하고 볼은 발그레 터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