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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Mar 06. 2023

서른이었다.

희미해지는 나를 가까스로 붙들고 있는 푸른 강아지

어릴 때 꿈은 서울대, 

중학생 때는 인서울,

고등학생이 되면 4년제 대학이면 정말 감사하다는 내용의 웃기고도 슬픈 짤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학창 시절 그 짤을 보았을 때는 "ㅋㅋㅋ 맞아 맞아"라고 하며 웃고 넘겼는데, 최근 들어 다시 보게 되자 순간 어떤 감정이 내 마음을 툭-치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 감정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린 나의 결론은 이렇다.

마냥 웃고 지나가기엔 이미 적지 않게 먹어버린 서른이라는 나의 나이와, 시대의 현실을 직접 느끼고 있는 나의 현실이 뒤섞여 내 피부에 절절히 와닿는 복잡한 감정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


직장에 소속된 채로 하루를 쏟아부어 밥벌이를 하면서도,

아침, 저녁 어떻게든 짬을 내어 나의 시간을 만들어보겠다는, 나의 생산성을 올려보겠다는 삶.

하루 중에 온전히 내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겨우 2-3시간 밖에 남아버리지 않은 삶.


알고 보면 이 2-3시간 마저도 인간관계의 지속을 위한 소통과, 미처 두고 오지 못해서 나를 그림자처럼 쫓아온 회사 업무의 연장이, 내 삶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시간의 범위를 점점 더 좁아지게 했다. 어쩌면 이러한 사실이 앞서 언급한 대학교 짤을 보고 내가 마냥 웃지만은 못한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그 좁아진 삶의 반경 속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의 속도와 방향을 엿보게 되고 엿보다 보니 얼추 비슷한 '일반적인, 보통의, 보편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또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다가 문득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면 그저 시간의 흐름이라는 유수풀에 튜브를 띄워놓고 그 위에 팔다리를 밖으로 내놓고 앉아서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내 삶의 정수가 없어진다.


눈떠보니 수많은 푸른 개띠들 중 평범한 한 사람이 되어 버린 나에겐, 천천히 삶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마치 하루 종일을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었던, 그래서 엄청나게 크고 넓은 꿈을 꾸고 내가 좋아하는 '나' 그 자체를 설계하고 바랄 수 있었던 어릴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왼쪽 가슴에 달려 있는 서른이라는 이름표 때문이라도 모든 걸 때려치우고 백수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만,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짬을 내어 저 멀리 희미해지는 '나'를 가까스로 붙들어보기로 했다.


잠시라도 좋으니 다시 나와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잠시라도 좋으니 옛날처럼 삶에 대하여 찬찬히 생각해 보자고,

점점 더 빠르게만 느껴지는 삶의 속력을 줄이고, 한 번은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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