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하 Jul 21. 2023

비가 무섭게 오는 요즘. 그럼에도 괜찮아

늦게 배운 음주, 그리고 그 식탁.

술을 늦게 배웠다.

늦게 배웠으니 좀 더 오래 마셔도 되겠지.


-

남의 이목을 신경 쓰시는 분이었다. 심하게.

곱게만 보낸 유년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고서야

고생의 총량을 짊어지셨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 뿐이셨으리라.

그 어떤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남의 이목을 지나치게 신경 썼으리라.

그러는 동안 한 번도 솔직히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겠지.


-

돌아가시고 내가 정신을 차린 뒤 한 일은

집안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었다.

긴 병원생활과 아니면 피폐해진 정신으로 살아가던 어느 시점부터 집안을 정리하지 못했다.

먼지한 톨 없이 정리 됐던 집이 언제부턴가 잡동사니와 쓰레기들로 가득 찼다.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고 무엇이든 많이 샀다.

불안에서 오는 저장강박 같았지만 한 번도 내게  곁을 주지 않고 늘 알아서 하겠노라 큰소리치셨다.

그러는 동안 점점 잠기는 방이 늘었고 찾아오는 사람이 줄었다. 그렇게 점점 고립되어 가는 도중 병에 걸렸고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투병 중임에도 한 번도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말하지 않았고 그저 가끔 본인의 집을 둘러봐 달라고, 빈집처럼 보이게 두지 말아 달라 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 부탁을 들어줄 마음의 여력도 없었고 그저 썩어가는 음식이 들어찬 냉장고를 외면하고 잡동사니로 가득 찬 방들을 구겨진 얼굴로 둘러보고 올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돌아가시고 누군가가 들여다보는 게 죽기보다 싫어했던 집을 방을 업체를 불러 모두 정리했다. 정리한 뒤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었고 그저 이 모든 짐들을 아픈 동안에도 전전긍긍했을 집의 상태를 그저 깨끗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유품을 챙기고 정리하는 절차 없이 모두 쓸어 버렸다.

유품을 살피러 갔을 때, 서랍마다 방 곳곳 구석구석 즐비한 상비약과 진통제를 보며 더 이상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마주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모두 쓸어 버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빈집으로 정리했다.

복직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한 일은 오직 그것이었다.


-

3년이 지났다.

아직도 나는 그 집 꿈을 꾼다.

지난주 큰 비가 내린 그날 엄마는 그 집을 둘러보러 왔다.

"이렇게 나와도 괜찮아?"

"비가 와서, 여기 밭도 내가 정리했어. 채소들 가져다 먹어."

"어떻게 돌아가려고?"

"아저씨가 데리러 올 거야."


꿈에서 생각했다. 병원에 있던 게 아닌가? 아닌데..

엄마는 돌아가셨는데.. 누가 데리러 온다는 거지?

그 보다 엄마는 어디서 온 거야?

깨어나고도 한참 멍하다가 한편 다행이다 싶었다. 엄마가 그렇게나 꿈꿨던 로맨스그래이를 어디선가 이루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나 보다.

내가, 빈집을 걱정하는 내가 걱정돼서 들렀구나 하고.

지난 일주일간 큰비가 오는 동안 내내 마음 쓰인 빈집.

그 빈집보다 그 집을 신경 쓰는 내가 마음 쓰여 내 꿈에 들렀구나 했다.


-

술을 늦게 배운 내가 언젠가 술 마시는 나를 보고 놀라며

"내가 너 해장국 끓여주는 때가 다 오네."

라며 아침 겸 점심을 주던 엄마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늘 바빴고 늘 내 곁에 없던 엄마.

삼시세끼 애틋하게 해 주던 엄마밥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지만 시간이 될 때면 늘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던 엄마. 그 억지스러운 행복하고 싶어 하는 듯한 식탁이 너무 싫었던 나.

그럼에도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그 말이 자꾸 떠오른다.

딱 한번뿐이었던 그날 그 밥상이.

작가의 이전글 총량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