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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하 Dec 21. 2023

T와  F가 함께 산다는 것은

그건 모멸감이었어.


남편에게 아주 직접적으로 나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내가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 내 남편과 친하게 지낼 때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다.

그건 아니라고, 나의 부인은 나한테 소중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당신이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네가 싫은 사람은 나도 싫다고.

바라는 것은 오직 그 말이고 오직 내편이라는 안도감이다.


하지만 남편은 공정하고 객관적이다.

언제나 어느 순간이나.

내가 싫어해도 그 사람은 나름 좋은 사람임으로 굳이 본인까지 거리를 둘 필요 없으며 너를 나쁘게 말해도 나에게 필요한 사람임으로 너와는 별개로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그걸 서운해하는 네가 이상한 거라고.

아무런 악의 없이 천진하게 말한다. 그리고 덤처럼 덧붙인다. 네 곁엔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글쎄 나는 정말 아무 걱정되지 않을까?

나는 묘하게 슬퍼진다.

늘 내편에 아니면서 내 곁에 있는 남편에게 느끼는 그러한 감정이 나는 어떤 것인지 몰랐다.


하나의 슬픈 경험은 다른 슬픔들을 불러온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나는 늘 공감의 단절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혼자 삭힌다.

남편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감정임으로 오직 내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내가 잘못된 것임을 납득할 때까지 생각하고 생각하다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많은 일들이 지나간다.

단 한 가지의 일  공감받고 이해받지 못했으므로 치유되지 못하고 생활에 쫓겨 미뤄두고 평범한 척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치유된 적 없던 많은 슬픔과 아픔은 조그마한 일에도 한꺼번에 몰아치며 깊고 깊은 땅 속 어딘가로 나를 몰고 간다. 별일 아니라고 수없이 나를 달래보아도 나아지지 않고 하나가 더해진 아픔과 슬픔을 모두 되새김질하며 잠들지 못한다.

세상에는 최선을 다해도 내가 생각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며 내가 이렇게 작은 것에 아파하는 만큼 정 반대의 사람도 존재함을 모르지 않음에도 늘 같은 식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진정된다.

     


가끔 누군가 베푼 의미 없는 호의, 공감하는 표현에 마음이 녹아버린다.

 그동안 내가 감정에 대한 공감을 얼마만큼 받지 못했는지 깨닫는다.

내가 말하지 않았어도 배려해 주는 그 작은 호의와 내 말과 행동이 아닌 그 행간을 살피며 해주는 공감에 나는 슬퍼다.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다만 감정의 교류를 모르는 사람일 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인 나와 감정이나 마음은 개개인의 몫으로 생각하는 남편. 그러니 우리는 누구도 나쁘지 않지만 감정적인 내가 늘 속상하고 화가 난다.

남편은 그런 나를 그냥 내버려 둔다.

내 감정이 가라앉기 많을 기다리며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앞서 말한 치유되지 못하고 그저 시간에 흘러버린 많은 것들로 인하여  겉으로는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은 듯 살아낸다.

그때 다시 남편은 내게 다가온다.

별일 아니었지? 라는 듯이.


지구상에 일어나는 온갖 나쁜 일 또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대재앙 같은 것을 생각하며, 그것에 비하면 나의 이런 감정은 한낮 투정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을 남편은 알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슬픈지, 속상했는지는 오직 내가 정리해야 할 내 몫이다.     

남편은 정말 모른다. 모르니까 마음 편히 내가 정리할 시간을 줄 뿐이다.


이십여 년간 내가 나에 대하여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천성이 그러함으로 점점 내가 나쁜 사람이 것만 같다. 열심히 사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기도 팍팍한 인생에 쓸데없이 징징거리는 사람 같다.

그런 내 마음마저 처연하고 슬퍼서 그저 혼자 운다. 눈이 붓도록 울어도 알지 못하는 남편과 함께 살아가야 하므로 그저 글을 쓰고 털어버리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낸다. 조금 더 메마른 감정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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