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이란 것이 꼭 애정을 보장하지는 않아.
넌 이모 닮았어-라고 말하는 내 말속에 비난이 들어있다고 아이가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이유가 없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몸 소 배웠다.
부모의 부재 속에 남겨진 형제자매는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성장한다.
형의 입장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감히 동생의 입장을 대표해 본다면,
부모가 없는 집안의 형은 부모 이상의 존재감을 가진다.
부재가 길어지고 돌봐줄 어른이 없는 집에서의 형의 위치는 거의 신이다.
부모보다 무섭고 부모보다 어렵고 부모보다 사랑받고 싶어지는 존재.
그것이 바로 남겨진 동생이 형에게 가지는 감정이다.
나에게는 그런 언니가 있었다.
부모의 존재가 있을 땐 아주 어렸지만, 나보다 뭐든지 잘하고 나보다 뭐든지 잘 나있던 언니.
부모의 존재가 사라지고 여기저기 단 둘이서 떠돌던 어린 시절의 내게 언니는
사랑을 구걸하는 대상이자 무섭고도 어렵고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늘 나를 싫어했고 미워했음을 어린 그때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언니를 사랑했다. 그래서 사랑받고 싶어 했다.
언니는 왜, 어느 시점부터 나를 미워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진짜 나를 미워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표현하는 것일 뿐, 부모의 역할을 떠맡은 지금이 너무 힘들어서 화를 내는 것일 뿐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었다.
화풀이 삼아 나를 때리고 머리를 뽑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고 했던 모습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욕하고 바보취급 할 때도,
내가 아끼는 물건이 옷을 함부로 다루고 내가 하는 모든 노력과 행동을 비웃을 때도
나는 미련하게 언니를 사랑했었음으로 기꺼이 그 모든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임으로, 언니는 늘 나보다 나은 사람임으로 내가 나를 언니가 생각하는 그 정도의 인간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 어린 시절의 몇몇 친구들이 언니를 욕하고 잘못된 것이라 해도 나는 오히려 그 친구들을 멀리했었다.
애정이 고팠던 나는 늘 나의 하늘이 언니라고 믿었다.
보호자가 생기고 내가 조금 나이를 먹었을 때,
언니의 많은 행동들이 부적절하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면전에 두고 모른 척하고 돌아온 보호자를 비난하며 새로운 남자에 빠져있을 때,
적당한 일만 하며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함부로 말할 때도,
말로는 이길 수 없는 우주적인 논리로 이성을 만나고 유부남을 만나며 내게 소개할 때도
언니와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언니가 또 나를 미워할까 봐 그 말이 맞는 것처럼 그 상황이 나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맞장구치고 돌아와 뭔가 이상하다는 내 마음과 한동안 다투곤 했다.
늘 삐딱하게 나를 대하고 무시하다가도 배고플 때 차려줬던 음식들과 가끔 토닥여주던 그 작은 손이 생각나서
언니의 모든 행동은 올바른 것이고 내가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를 향한 미움도 내가 뭔가 잘못했을 것이라고, 그게 뭔지 모르는 내가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보호자 없는 그 어린 시절의 배고픔을 채워주었던 음식과 토닥여주던 손길의 힘은 매우 강했다.
그런 행위에 사랑을 담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 안에 깊은 사랑이 있을 것이라 믿었으므로, 꽤 긴 세월을
언니의 가스라이팅 같은 말을 한 번도 가스라이팅이라 느끼지 못했다.
언니는 똑똑하게 말을 잘했고 글을 잘 썼음으로 언니의 말과 글 속의 나는 내가 처음 본 나였지만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일지 모름으로 나는 참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고 긴긴 세월을 살았다.
수시로 인연을 끊자는 말에 무수한 공포를 느끼며 꽤 오래 나는 언니를 사랑했다.
정신을 차린 것은 둘째를 낳아 기르며 내가 누군가의 배고픔을 채워주고 따뜻한 손길로 토닥이는 삶을 살던
어느 때였다. 내가 토닥인 그 아이는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를 토닥이며 사랑의 말을 퍼부었다.
사랑하면서 비난을 퍼부울 수 없음을, 그간의 내 믿음은 일방적인 나의 짝사랑이 만든 허구임을 두 아이를 키우며 깨달았고, 여전히 내 두 아이들과 내 가족을 쉽게 말하고 함부로 대하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내 아이를 모른 척 지나며 눈을 아래로 촥 내리깔고 지나던 엄마의 병실 앞에서 나는 언니의 소원대로 언니를 놓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사회적으로 아니, 현실적으로 살펴봐도 늘 어긋나고 모난 것은 언니였는데
열심히 사는 내가 언제나 언니의 비난 대상자였고 언니와 이야기를 하면 나는 늘 나쁜 사람이었다.
그렇게 인연을 끊은 언니는 엄마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고 정말 우리는 남남이 되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과 갖은 억측들을 마치 사실인 듯 지역의 카페에 적었다.
마치 보란 듯 적어 두는 그 글들에서 나는 지난 30여 년간 계속 미움을 받고 있음을 드디어 정확히 알게 되었다. 도덕적인 사람인 척 본인을 포장하며 본인의 부족함을 돌아보지 않고 타인을 비난하는 그런 글들에서 분노보다는 안쓰러웠다. 그저 지금의 삶이 힘들구나... 싶어서 안쓰러웠다.
나는 늘 언니가 나보다 잘 살기를 본인이 만족하는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산다. 핏줄이 유난히 귀한 내 인생에 나를 돌봐주던 작은 언니가 잘 되기를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언니에 대한 마음이 무조건 적인 사랑은 아니라 늘 괴롭다. 사랑받지 못한 어린 내가 언니를 미워하는 어린 내가 내 마음에 살고 있음으로..
가끔, 딸아이가 날 토닥일 때 딸아이가 나에게 무언가 챙겨주며 음식을 권할 때 언니가 떠오른다.
딸아이는 운동신경이 없고 주위력이 산만하지만 글을 잘 쓰고 좋아하는 일은 매우 잘한다.
아이의 성향을 볼 때마다, 아이의 체형과 머리숱과 패션감각을 볼 때마다 언니가 떠오른다.
아이는 언니가 아닌데 꽤 닮아있다.
말투도 성향도 언니를 많이 아이가 잠든 밤, 핏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언니와 나의 관계는 오직 내 문제임에도 언니를 닮은 행동을 하는 딸아이를 보는 내 마음은
늘 두 길로 갈라진다.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임을 인식하지만 닮은 그 모습이 괴로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핏줄의 무서움을 느끼면서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 미안한 마음에 나는 오늘도 잠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