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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집에 가고 싶고 집에 가기 싫어

여행에는 끝이 있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by 김초하


고작 15일 다녀온 여행에 긴긴 이야기를 써 두고 싶었는데,

기록해 두지 않았던 많은 기억들이 사라져 갔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냐짱을 여행하며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많이 잊히게 됐다.

언제 내가 여행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냐짱에 다녀온 지도 어느덧 두 달이 지나간다.

아들이 갑자기 지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엄마, 생각해 보니까 냐짱 좋았던 것 같아.

따뜻하고 바다도 가깝고 러닝도 즐거웠고

시장도 즐겁고.

난 음식이 진짜 안 맞아서 고생했지만, 또 가고 싶어.

그때는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이면 더 좋겠지만. "


냐짱을 만족스럽지 않다고 부루퉁했으면서!


"나는 매일 집에 가고 싶기도 했고

또 매일 여기 계속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좋은 건 너무 좋았고 싫은 건 너무 싫었거든.

근데 지금은 그저 그립네!"


이건 옆에 앉아있던 딸의 말.

누가 보면 몇 달 살다 온 것처럼 아이들은 냐짱에 대한 나름의

소감을 문득문득 말하곤 한다.

아주 미화된 소감을.

여행은 그런 것이지.

머무를 때 보다 돌아와서 시시각각 기억이 왜곡되는.

주로 좋은 쪽으로.

고생했던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되니까.

심지어 고생했던 일들이 더욱더 잊히지 않는

가장 즐거운 에피소드로 기억되니까!

그래서 다들 여행을 가는 거 같다.




냐짱에 머무르며 나는 감기를 앓았다.

한국에서부터 따라온 지긋지긋한 감기.

춥지도 덥지도 않았는데, 감기에 걸린 건 아마도 평소보다 많이 걸어서

몸이 피곤했서였던 것 같다.

평소에는 잘 걷지 않는 나였는데, 특히 냐짱에 왔던 초반

하루 2만 보 넘게 걷는 날이 많았고 나름 몸에 무리가 왔었던 것 같다.

다행히 나는 한국에서 처방받은 감기약을 처방받아 가져왔던 터라

약 먹고 하루정도 쉰 뒤 정산 컨디션을 회복했다.

그 아팠던 하루,

아이들은 한 번도 엄마를 찾지 않았다.(필요해서 찾지 않았다는 뜻-)

덕분에 정말 푹 쉬면 마음껏 아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엄마라는 이름은 아파도 쉴 수만은 없었는데,

여행지에서의 엄마는 동등하게 휴식이 가능했다.

어차피 엄마에게도 이곳은 낯선 곳이니까!

낯선 곳에서 아픈 엄마는 돌봐줘야 하는 존재였고 나는 오롯이 환자였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 집에 가기 싫다.



그럼에도 여행은 반드시 끝나고 끝이 있어서 설렌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일상과는 다른 풍경과 생활은 오래지 않음으로.

따뜻했던 냐짱과는 달리 여행기간 내내 한국은 혹한기였다.

폭설이 내리고 연일 기록적인 온도를 기록해 가는 동안

우리는 따뜻한 나라에 있었다.

그 추위 속의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오며 느낀 안도감이 있다.

나도 딸아이처럼 이 여행지에서 매일 집에 가고 싶고 집에 가기 싫었다.

낯섦이 주는 불안이 다름이 싫었고 낯섦이 주는 두근거림이 좋았다.

그러니까 지금 일상을 또 열심히 살자.

그래서 또 떠나자.

불안과 설렘이 공존하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위해.


도착해서 가장 신났던 건 아들!


+) 사실 가장현실적으로 걱정했던 것은 동파였던듯하다.

한겨울 이렇게나 오래 집을 비운적이 없거니와, 내가 사는 곳은

눈이 잘 오지 않고 많이 춥지 않은 곳인데

올해 2월 초 우리의 여행기간 내내 폭설과 혹한이 찾아왔었기 때문에

문득문득 집이 걱정됐으므로 돌아와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내 집 문을 열던 그 순간의

안도감이 냐짱 여행의 끝에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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