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의 편의를 위해서 출처표기때 쓰는 기호들은 전부 생략합니다.
발해는 일본과 많은 교류를 가져 왔으며, 많은 성과, 사이개선이 있었습니다.
고구려 시절보다 더욱 친선대상이 줄어든 발해는 자연스레 일본에 많은 친선시도를
하게 되었는데요, 발해와 일본의 사이에는 거대한 동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발해가 일본에 사신을 보내려면 어떻게든 동해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동해의 특성을 보면, 결코 과거에 항해하기 쉬운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사료들을 보면, 동해를 건너다가 사고가 많이 나기도 했으며, 배가 뒤집히고,
사신이 익사하고, 사절단이 박살이 난 경우까지 보입니다.
게다가 운이 좋아서 일본 해안에 표류해도 오해를 받고 공격당하거나,
아예 아이누 땅까지 흘러가서 황당하게 목숨을 잃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해는 일본과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일본에 많은 사절단을 계속 보냅니다.
왜냐면, 발해에게 친선을 할 수 있는 국가는 일본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그 와중에 일어난 사절단의 천로역정 대장정 못지않은 수난(水亂)기입니다.
험하기로 이름난 동해를 건너면서 발해 사신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려주는 사료들로 구성 했습니다.
속일본기 10 中
-일본 성무천황 신구 4년(727) 9월 경인일, 발해군 사신 수령 고재덕 등 8명이 출우국에 도착했다. 사신을 보내 안부를 묻고 아울러 맞는 옷을 하사했다. 12월 정해일에 발해군왕의 사신인 고재덕 등 8명이 서울에 들어왔다.(중략)발해국이란 옛 고구려국이다.(중략)
발해군왕이 영원장군 고인의 등 24명을 조공하러 보냈는데, 하이(蝦夷 : 아이누...)의 경내에 도착하여 고인의 등 이하 16명은 모두 살해되고 수령 고재덕 등 8명만이 겨우 죽음을 면하고 왔다.
이 속일본기 10권 기사는, 727년, 발해 무왕시기 보낸 사신입니다. 아마 일본에 처음 간 발해 사신으로 유추됩니다. 시작부터 난리가 납니다. 친선하러 선물 실어 보냈는데, 하필이면 풍랑을 만났는지, 아이누 땅까지 흘러들어가서 무려 16명이 살해되고 남은 8명만이 겨우겨우 살아서 일본에 도착합니다...
이 고재덕이 누구인가 발해국지 8편 제신열전에서 보면,
고재덕
-고재덕은 무왕때의 수령이다. 인안 8년(727년) 가을에 정사 고인(위에서 나온 고인의)을 따라 일본에 빙문을 갔는데, 이것이 양국통빙의 시작이다. 고인 등은 하이에게 살해되고 다만 고재덕 등 8명이 화를 면했다.(중략)
일본천황은 고재덕 등 8명에게 모두 정6위상을 제수했으며, 연견하고 향연을 베풀었다.(중략)
4월에 고재덕 등 사신이 돌아왔다. 일본은 인전종마려를 환송사신으로 임명하여 그들과 함께 와서 빙문에 보답하도록 하였다. (후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사신 고재덕은 일본에 사신으로 가는 임무를 완수했으며, 심지어 후년 4월에 다시 일본에 가서 성과를 가지고 옵니다..
속일본기 13 中
-10년(738년) 3월 (중략) 마침 구 왕 대흠무가 사신을 뽑아 일본조정에 보내려고 하여 즉시 함께 출발했다. 바다를 건너는데 발해의 배 한척이 파도에 뒤집혀 대사인 서요덕 등 40명이 빠져죽고 평군조신광성 등이 남은 무리를 이끌고 출우국에 도착했다...
738년에 발해 문왕이 사신을 뽑아서 일본에 보내는데....배 한척이 파도에 뒤집혀서 대사가 죽었습니다..무려 40명이 죽고 다행히 남은 무리가 일본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이 사신들은 천황에게 직접 환영과 선물을 받아 돌아갑니다.
속일본기 22 中
-10월 신해일에 등원하청을 영접하는 사신 판관 내장기촌전성이 발해로부터 돌아오다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대마도에 표착했다.
이제는 발해인 뿐 아니라 발해에서 귀국하는 일본인까지 발해의 저주를 받았는지, 풍랑에 휩쓸렸습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고 대마도에 표류합니다. 분명 발해에서 돌아오다가. 라는 말을 보면 갈때는 무사히 갔는데 말이죠... 설마 올때는 마음대로가 아니라는 걸까요?...
속일본기 24 中
-8월 임오일에 처음 발해국에 배를 보냈는데 능동이라 이름했다. 본국으로 돌아오는 날 바람과 파도가 사납고 급하여 바다 가운데에서 표류했다.
또, 일본에서 가는건 멀쩡한데 발해에서 돌아오는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들은 다행히 죽지는 않고, 무사귀환 하긴 했습니다...
위와 동일
-10월 을해일에 좌병위 정7위하 판진겸속이 발해로부터 돌아왔는데 사람을 바다에 던졌으므로 옥에 갇혔다.
왜 던졌을까요? 진상은 바로 아래에 나옵니다.
위와 동일
-처음 왕신복(발해에서 온 사신)이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타고 갈 배가 낡고 약하여(중략..) 그 불완전함을 우려하여 관에 알리고 머물도록 청했다. 이에 사생 이상이 모두 가기를 중지하고 배를 수리하고 판진겸속을 곧 선사로 삼아 왕신복 등을 전송했다. 떠나보내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중략) 발해를 거쳐 함께 본국으로 돌아오는데, 바다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방향을 잃었다. 키잡이와 수수(水手)는 파도에 빠졌다.
이 때 판진겸속이 의논하기를, "다른 지방 부녀자가 지금 배 위에 있다. 또 우파새(남자 재가불자佛者)는 여러 사람들과 달리 한 끼에 몇알의 곡식만 먹으면 며칠이 지나도록 허기를 느끼지 않는다. 폭풍의 재앙은 틀림없이 이로 말미암을 것이다." 라 하고 곧 수수로 하여금 내궁의 아내와 갓난아이, 유모, 우파새 4인을 잡아 바다에 집어던지게 하였다. 그러나 바람의 기세는 오히려 강해져 10여일을 표류하다가 은기국에 도착했다.
이게 뭔 소리냐면, 발해 사신이 돌아가려는데 배 상태가 너무 별로여서..... 일본측이 배를 수리해주고 같이 발해로 데려다 준 일입니다. 그런데...일본에서 돌아오는데 동해 한가운데서 폭풍에 휩쓸려 난리가 나자, 선사가 배의 부녀자과 갓난아이, 승려들을 폭풍의 재앙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몽땅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황당한건, 일본으로 귀환하는 일본 학생 고내궁과 그 아내 고씨, 그리고 아들 고광성과 갓난아이 1명, 유모 1명에, 또 당에 갔다 귀국하는 학문승 1명과 그 일행인 우파새 한명을 같이 태우고 일본으로 귀국하는데, 자기랑 같이 타고간 인간이 아니라, 타국에서 일본으로 데려오려고 태웠던 고내궁의 아내, 갓난아기, 유모에 우파새를 전부 바다에 집어 던져 버렸다는 겁니다....
더 황당한건, 이래 놓고서도 진전없이 10여일간 표류하다 겨우 살아 돌아왔단 겁니다....
속일본기 32 中
-9월 무술일에 송발해객사 무생조수 등이 닻줄을 풀고 바다로 나아갔는데, 홀연히 폭풍을 만나 능등국에 표착하였다.
발해 떄문에 폭풍병이 옮았는지, 이젠 일본도 슬슬 동해 폭풍의 피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속일본기 34 中
-7년(776년) 12월 을사일에 발해가 헌가대부 사빈소령 개국남 사도몽 등 167명을 보내 우리 천황 즉위를 축하하고 아울어 그 나라 왕비의 상사를 알렸다. 우리나라 해안에 도착하려는데 갑자기 사나운 바람을 만나 키가 부러지고 돛이 떨어져 표류하다 죽은 자가 많고, 살아남은 자는 겨우 46명 뿐이었다.
일왕 즉위 축하하러 사신 보냈다가 또 사신이 파도에 당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왜 자꾸 발해에서 일본으로 가는건 문제가 많을까요. 이쯤되면 발해의 배가 문제였다?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위와 동일
-8년(777년) 정월 계유일에 사신을 보내 사도몽 등에게 지난 보구 4년(773)에 오수불이 본국으로 돌아가던 날 태정관이 처리하여 발해에서 입조하는 사신은 이제 이후로는 마땅히 옛 규정에 따라 태재부로 향하고 북로를 취하여 오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약속을 어겼으니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물었다.
사도몽이 대답하였다. 오수불이 돌아오는 날 진실로 이 뜻을 받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도몽 들은 우리나라(발해)남해부 토호포에서 떠나 서쪽으로 대마도의 죽실진으로 향했는데, 바다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이 금지된 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약속을 어긴 죄는 피할 길 없습니다. 라고 했다.
이 사료는, 발해에서 입조하는 사신은 이제 (위험한) 북로 뱃길 말고, 태재부 방향으로 오라고 했는데, 왜 오지 말란데로 굳이 왔냐? 하고 일본에서 의아해서 물은 겁니다. 그런데 대사 사도몽의 말은, 저희는 제대로 갔는데 폭풍때문에 이리로 온겁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속일본기 35 中
-9년(778년) 4월 병오일, 이에 앞서 보구 7년(776년) 발해 사신의 일행 30명이 물에 빠져 죽고 표류하다가 월전국의 강소군, 가하군 두 군에 도착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이, 역대 발해사신들이 당한 수난 중 최고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776,777,778년 3년 연속으로 사절단이 박살이 나고 있습니다.
위와 동일
-발해사신 장선수가 특산품을 바치고 아뢰길,(중략) 길을 잃고 표류하다가 오랑캐 땅에 도착했는데, 타고 간 배가 파손되어 돌아갈 방법이 없으므로 배 2척을 만들고 장선수 들을 보내 고려전사를 따라 입조하게 하고 아울러 바칠 물품을 실어보내 천조에 삼가 올립니다. 라 하셨습니다. 라 하였다.
발해 사신이 선물 보내러 갔는데, 또 표류하여 배가 박살나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배 2척을 다시 만들어 데려 와서야 사신의 입조가 가능했단 말입니다........이쯤되면 발해의 배가 진짜 문제가 있던 걸까요..?
위와 동일, 9월 경진일 기사.
-발해 및 철리의 359명이 교화를 사모하여 입조하여 출우국에 있으니 예에 따라 물건을 공급하되, ...(중략)그들이 타고 온 배가 만약 훼손되었으면 또 마땅히 수리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날을 지체하지 말라.
이쯤 되면 발해 배 불량품 인증이 맞는거 같기도 합니다.
위와 동일.
-출우국에 있는 359명은 지금 엄동설한이고 바닷길도 험하니 만약 금년동안 머물러 있기 원한다면 그것을 들어 주도록 하라.
한마디로, 지금 추우니까 너희들 또 파도에 죽고싶지 않으면 그냥 이번년도에는 머물러 있게 하라. 이겁니다.
위와 동일
-발해통사 종5위하 고설창이 멀리 험한 파도를 건너 수차례나 입조했고, 말과 생각이 충성스럽고 근실합니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를 제수해야 합니다.
험한 파도 여러번 뚫고 가니까 기특하다고 높은 자리까지 주려 하네요.
위와 동일
-12월 무오일, 검교발해인사가 말하길, 발해사신 압령 고반필 등이 타고온 배가 파손되어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조정에서 은혜를 베푸셔서 배 9척을 주셔서 본번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라고 간청했습니다. 라고 하니 이에 허락하였다.
발해의 배가 답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일본인들이 배를 무려 9척이나 줘서 돌아가게 해줍니다...
속일본기 39 中
-연력 5년(786) 9월 갑진일에 출우국에서 알리기를 발해국사 대사 이원태 이하 65명이 배 한척을 탁고 표류하다가 부하에 도착했는데, 하이(아이누)에게 12명을 노략당하고 41명이 살아남았습니다. 라고 했다.
이젠 동네 북입니다........아이누한테도...
일본후기 8권 中
-5월 병진일에 앞서 견발해사 외5종위하 내장숙예하무마려 등이 말하길,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에 바다에서 날은 어둡고 동서로 이리저리 이끌려 어딘지 모르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때 멀리 불빛이 보이기에 그 빛을 따라가니 한섬의 해안가에 도착하였습니다. 물어보니 은기국 지부군이었는데 그곳에는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비내마치비매신이 항상 영험하여 장사하는 무리들이 바다에서 헤맬때 반드시 불빛이 날리는데 그 불빛에 의지하여 구원된 사람이 헤아릴 수 없다. 라고 합니다. 신의 돌봄에 보답하는 것이 좋을듯 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참례하고 전례에 따라 재물을 바쳐야 합니다 라고 말하니 허락하였다.
발해에서 돌아오는 일본 사신들이 바다에서 길잃고 표류할뻔 하다가 겨우 불빛보고 살아돌아와서 감사합니다 하고 제물 바치는 이야기입니다. 이사람들이 발해로 갔을때는 아무말도 없던것 보니, 역시 발해->일본항로는 뭔가 씌인게 분명합니다.
일본후기 21권 中
-10월 계해일, 정6위상 임숙예동인 등이 발해에서 돌아와 아뢰길, (중략) 그 녹사 대초위하 상모야공사익 등이 탄 두번째 배는 떠나던 날에 서로 잃어버려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 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라고 했다.
이제는 동해판 버뮤다 삼각지대까지 찍습니다.....왜 일본에서 발해 갈때는 이상이 없는데, 발해에서 일본 올때만 이상한 일이 터지는 걸까요?
일본후기 24권 中
-5월 부자일, 발해국사 왕효렴 등이 바다에서 역풍을 만나 표류하다 되돌아 왔다. 배의 노가 부러져 다시 쓸 수 없게 되었다. 계사일에 월전국으로 큰 배를 골라 번국(발해)사신을 태워 보내도록 했다.
발해의 배가 하자가 있다는 설에 또 큰 힘을 싣게 하는 내용입니다. 이 역풍땜에 되돌아온 국사 왕효렴은 결국 고국에 가지 못하고 다음달 6월에 일본에서 사망합니다..;
일본삼대실록 23권 中(873년)
-어느곳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 60명이 배 두척에 타고 살마국 증도군에 표착했습니다. 말이 통하기 어려워 무엇으로써 문답을 할까 했는데, 그 수령인 최종돠, 대진윤 등이 스스로 글을 써서 최종좌 등은 발해국 사람으로 저희들 국왕께서 당나라에 들어가 서주의 평정을 축하하도록 보냈는데, 바닷길에서 풍랑이 험하여 표류하다 이에 이르렀다. 라고 생습니다. 국사가 사실과 뜻을 살펴보니 공험(여행 신분증)이 없고 기년도 어긋났습니다. 아마 이것은 신라 사람이 발해사람으로 거짓을 칭하고 변경을 엿보러 온 것이 아닐까 합니다. 두 척의 배를 이끌고 부를 향하는 사이에 한 척은 바람을 만나 돛을 날려 도망했습니다. 라고 아뢰었다.
표류한 사람들이 발해 사람인줄 알고 데려가 도우려 했는데 가만보니 이놈들 문서도 어긋나고 신분증도 없어서 신라놈들 아냐? 하고 일본에서 의심하는 장면입니다. 결국 두척중 한척은 도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칙령을 내려서, 표류한 자가 발해인이면 위로하고 식량도 주고 돌려보내고, 신라의 '흉측한 무리' 라면 모두 가두고 아뢰도록 해라...하는 무시무시한 칙령을 내립니다... 그 원인은 신라구가 아닐까 하네요. 결국 이 내용도 신라구가 표류하다가 걸려서 죽을거 같으니 발해인이라고 뻥친게 아닐까 합니다.
라고 추정할수도 있겠지만.........? 진실이 바로 뒤에 나옵니다.
일본삼대실록 24권 中
-7월 경오일에 이에 앞서 대재부가 역마를 달려 알리기를, 발해국인 최종좌, 문손재 등이 표류하다가 비후국 천조군에 도착했습니다. (중략) 발해국입당사라고 합니다. 지난 3월 살마국에서 도망해 간 한척의 배였습니다. 라고 했다. (중략)
최종좌 등을 신문하여 올린 글을 보아도 발해사람임을 알겠다. 그 표함, 첩서, 인장을 찍어 밀봉한 관의 직함 등이 먼저 조공하러 온 것들과 비교해보니 일치했다. 최종좌 들은 변경의 틈을 엿보는 간악한 도적이 아니고 신린의 임무를 띤 사신으로서, (중략) 그들이 타고온 배 두척은 파손된곳이 있거든 정성을 다해 고쳐주어 충분히 파도를 헤치고 나갈 수 있도록 하여 잘 떠날수 있게 하라.
앞에서 달아난 배는 결국 발해 배가 맞았습니다. 그래서 앞서 잡힌 1척도 무사할수 있던 겁니다. 아마 표류하던 난리통에 증명품을 거의 잃어버린게 아닐까 하네요. 다행히 그전에 받은 문서와 도장으로 인해 사신임이 증명되고 무사히 돌아가게 됩니다.
일본측에서는 이 뒤에 다만, 너희들 사신인데 우리 조정이 겁나냐?...그때 그냥 털어놓으면 구제해줬는데 왜 달아나냐? 우리가 관대하지 않았으면 쟤네 다 그자리에서 죽었어. 이건 쟤들잘못도 있어. 라고 얘기합니다.
일본일사 4권 中
-연력 14년(795년) 11월 병신일에 출우국에서 아뢰길, 발해국사 여정림 등 68명이 오랑캐 땅인 지리파촌에 표류하여 도착했는데, 약탈을 당하여 사람과 물품이 흩어져 없어졌다. 고 했다.
이쯤 되면 진심 불쌍해집니다..............ㅠㅠ
발해국지 1편 대현석 中(873)
-2년 봄에 신하 문손재, 최종좌, 대진윤 등을 보내 당에 조공하고 방훈의 난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3월에 일본에 표착하였다.
이 위에 위에 있는 일본삼대실록 23권 기록과 일치합니다. 이쯤되면 발해 사신들이 불운을 불러 오는지,
발해의 배가 불량품인지 모두가 의심갈 정도입니다.....
물론 이 글에 수록한 케이스는 모두 잘 못된 케이스이고, 나머지 사신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안전히 다녀 왔습니다.
하지만 동해가 얼마나 사나웠는지, 발해 사신들이 얼마나 운이 없는지, 발해 배가 불량품이었는지에 대해
알수 있는 기사들이 꽤 나와서 재미를 느껴서 나열하고 설명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외전격이겠지만, 발해가 왜 일본에게 이렇게까지 매달렸는지, 일본이 발해를 은근 하대하고 신하 취급하였는데도 발해가 찍소리도 못하고 어쩔 수 없었는지는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요약
1.동해는 험하다
2.발해는 그 험한 동해를 뚫고 일본과 자주 친목을 다졌다.
3.많은 발해 사신이 해난사고와 도적질, 강도질을 당하거나 죽었다.
4.이상하게 일본에서 발해로 가는 사례는 사고사례가 적은데, 발해에서 일본으로 가는 사례는 사고가 많다.
5.일본은 발해의 배를 못미덥게 여겨서 수리를 해주거나 자신들의 배를 주기까지 했다.
6.결국 이 모든것을 감수하고 한 친목질의 결과, 발해는 일본의 최우방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