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텐투텐" 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말 그대로 10 to 10. 학교를 다니지 않는 방학기간에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그 대상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 뿐만이 아닌,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는 중학생, 이제는 초등학생들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나 또한 특목고 입시를 위해 중학교때 텐투텐을 경험해본 세대이다. 아침 해와 잠깐 인사하고 학원 건물 안에 들어가,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집에 들어가는 일상. 반복되는 지옥같은 행군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같은 학원에서, 같은 목표를 가진 채 공부하던 친구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 나와 달리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는 혼자였을 것이다. 마을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면서, 남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을 원동력삼아,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삶. 자신과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고립되어 목적지 모를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인생.
주변인들은 말한다. 한스는 뛰어나고 총명하여,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많이 벌기위해 노력한다고. 그러나 한스가 돈 때문에 불행하다고 한적이 있떤가? 혹은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던적이 있던가?
작중 한스가 행복하다고 묘사되는 장면은, 돈과는 전혀 관련없는 낚시나 산책등을 할 때이다. 그래, 한스의 행복은 돈과 관련이 없었다.
그럼 새로운 관점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한스는 학교에서 퇴학당해 돌아온 이후에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마을에 돌아와서 계속 우울했던 것인가?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스는 관성에 의해 삶을 살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스스로 선택한 적 없이, 남들이 '이렇게 하면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행동으로 옮겨온 삶. 마치 눈을 감고 계곡에서 보트를 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잔잔한 상류에서부터 점점 내려가며, 물살이 거세지는 지역을 만날때, 눈을 감고 있더라도 보트 위에서 버티기만 한다면, 당신은 충분히 스릴 넘치고 재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순간의 실수로 보트에서 떨어진다면, 그제야 눈을 뜬 당신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이곳이 어딘지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다시 그 스릴을 느끼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를 것이다. 보트를 탄 것은 당신의 선택이었을지언정, 그 보트가 무엇이었는지, 어디서 타야하는지, 어떻게 타야 하는지 당신은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한스도 그렇지 않았을까? 보트 위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아왔으나, 보트 밖에서는 어떻게 해야 그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르는 것 아닐까? 그래서 길을 잃고 원초적인 자극을 찾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가. 그저 보트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뿐인, 조금 운이 좋은 한스는 아닐까? 그러다 강의 끝에서 고여있는 호수에 도착하게 되면, 아무 자극도 느끼지 못한채, 보트의 바람이 빠질때까지 위에서 버티다가, 그대로 물 아래로 가라앉을 인생을 살고있지는 않은가?
정말 운좋게도 혼자가 아니기에, 주변인들이 있기에.
정말 다행히도 보트에서 튕겨나가지 않았기에.
어쩌면 너무 많은 사람을 깔아뭉갠 수레바퀴의 괴물이, 지금은 조금 쉬고있을 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