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적 단조로움과 청각적 다채로움의 향연
2025년 9월 23일. 가을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길목.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연극 한 편을 보았습니다.
정동환 배우님의 55년 기념 공연,
단테 신곡 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연극이었으며,
추상적인 무대와 어우러진 상념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단테의 신곡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읽을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연극이 의미있었습니다.
작품 감상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째, 시각적인 단조로움 속 청각적인 다채로움의 향연이었다.
둘째, 내면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라는 사람을 만나고 왔다. 입니다.
첫째에 대해 말해봅니다.
단테 신곡의 긴 줄거리는 지옥편을 체험하면서입니다. 빨간 의자와 거울, 이동형 판상, 바퀴와 손잡이가 달린 지옥을 건너는 이동장치 등의 추상적인 무대 장치를 뒤로하고, 배우들의 몸이 보여주는 인간의 형상들에서 사실 자극은 없었습니다. 지옥편은 지옥을 형상화하였으니 지극히 시각적으로도 끔찍하여야 하지만, 실상 현대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현실 세계가 더욱 잔혹하기에 시각적인 부분은 단조로웠습니다. 게다가 넷플릭스의 시각화에 의해 우리의 눈이 과잉된 이유도 한몫하겠지요. 오히려 시각적 디톡스를 체험했다고 말해준 옆 동료의 말이 뇌리에 남습니다. 그러나 사실 지옥편을 어떻게 무대로 구현하였을지가 궁금해서 이 연극을 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거울 시퀀스는 매우 의미있었습니다.)
이에, 저는 더욱 청각적인 다채로움으로 흠뻑 젖어들었습니다. 음향효과가 놀라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배우들의 소리는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현대적인 음악이 그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요.
오직 배우들의 동작과 음성이 매우 빛이 났습니다.
절제와 치달음
울부짖음과 분노
고요와 침묵.
읖조림과 흐느낌
그리고,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으며 하는
그들의 호흡, 숨과 땀까지...
그리고 원작이 주는 대사의 깊이와 내면의 이야기들은 저에게 문장 문장 곱씹을 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그 청각적 요소가 주는 향연에 저는 몸둘바 모르게 극 안을 방황하며 그 안에 저를 놓아두었습니다.
저의 두번째 감상. 나를 자꾸 돌아보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단테 신곡의 이야기는 아마 중세 시대 종교 개혁 즈음인가 봅니다(찾아보지는 않음). 신이기를 탐닉하는 인간의 교만함, 그 반대로 나오는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이야기까지.. 참으로 먼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의 세계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살면서, 신성과 영성에 대한 깊이 있는 고뇌를 고민하는 것이 이제는 떠오르지 않을 동화속 세상 같으니까요.
그러나 단테가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러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베아트리체의 말을 통해 전해지는 사랑의 메시지는 결국, 인간은 무엇을 향유하며 이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저의 가치관을 다시금 묻게 해 주었습니다.
사랑이라.....
멜랑콜리하면서도 심장을 두근대는......
단테는 살아생전 베아트리체가 첫사랑이었으며, 베아트리체를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간절하게 그 사랑을 원하였을지가 느껴졌습니다.
인류를 위한 사랑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사랑
그리고
단 하나의 사랑까지
지옥-연옥-천국을 잇는 '사랑'이라는 가치에 대해
그 사랑 안에 나는 어디쯤 머물고 있는지
반문하면서
연극을 나왔습니다.
점점, 검색어에서, 우리의 표현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