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2]]구의 집이 보여주는 악의 평범성.

구의 집 - 혼모노 속 단편

by 봉자필름

사회학자 한나아렌트는 자신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하였다. 극악무도한 악이 괴물같은 존재로 형상화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악을 선택할 수 있음을 말이다. 사유하지 않을 때, 악은 언제든 행해질 수 있음을 말하였다.


어렸을 때에는 놀부같은 사람, 백설공주 속 왕비같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었다. 그들은 이미 처음부터 나쁜 사람으로 나왔다. 심술궂게 생긴 얼굴과 심보는 어린이의 마음속에 악은 악다움을 가진 존재에 의해 형상화 되는 거였다. 악마처럼. 그러나 살아보면서 이제야 느끼는 것 같다. 누구든 어느 상황에서든 악은 선택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렇기에 한나아렌트가 강조한 사유의 힘은 매우 중요하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 사건은 항상 불연속적으로,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그 사건 하나하나를 대하는 인간의 철학이 선택과 결과를 다르게 만들 수 있음이다.

그러나 교육에서 철학이 사라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무엇보다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선택,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선택하도록 우리는 교육 받아오고 있다. 그래야 타인보다 내가 앞설 수 있다. 경쟁을 통해 교육을 가치롭게 하고 이를 통해 직업을 선택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성공하기를 사회는 은연중에, 아니 어쩌면 대놓고 이제는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넘쳐나는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남과의 비교를 당연시하게 하며, 상대적인 박탈감과 따라하기, 구별짓기의 욕망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소셜미디어는 아직 자아를 형성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더 큰 자극으로 다가오고 있다.


구보승이라는 청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합리성의 선택을 통해 경동수련원 3층을 설계하였다. 인간을 위한 공간을 구성하였으나 그 안에 속할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정의하지 않았다. 그 인간의 속성을 타자화 속에서 분석하여 자신존재와 구별지음으로써 죄책감을 구성하지 않았다. 여재화 또한 뒤늦게 깨닫기는 하지만 그 또한 사유하지 않는 존재다. 자신의 욕망에 앞서 수련원 3층에 머물 인간 존재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사유하지 않았음은 자명하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판단할 것인가?

나의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고 시작할 것인가?

세상에 대한 추상적인 것들 혹은 구체화된 존재들에 대하여 어떻게 개념을 정의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 물질로 이루어진 생물학적 인간을 넘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무엇이 나를, 너를, 제3자를 나아가 자연을 세상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를.

작가의 이전글[미디어1]정동환 님의 연극, 단테 신곡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