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돈균의 책 <초연결학교>를 읽다.
지극히 이상적이어서 보이지않는 길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품은 학교의 시대가 온다"는 문장을 전면에 내세운 이 책은 지인의 추천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하이퍼커넥티드, 초연결시대 초연결학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금함이 있다면 나 또한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미래학교의 모습을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 중 나에게 인상적인 키워드를 뽑아보려 한다.
#0. 학교의 전제조건, 교육이란?
20세기 산업화 시대 교육은 산업화를 이끌 주역을 만드는 공장의 역할을 하였다. 21세기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기계와 경쟁하며 살아가는 인간시대의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재구성함으로써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개인의 힘을 길러주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 또한 야수 자본주의에 맞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헤쳐 나가고 세상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으로 교육을 바라보고 있다.
#1. 보르헤스의 도서관
20세기 산업화 시대, 모더니즘은 일대일 대응에 속하는 정답이 존재하는 시대였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사회적 합의(?) 혹은 주류의 이데올로기 속에 결론지어진 시대였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뚜렷한 방법이 존재했다. 과학의 발달은 정답을 더욱 요구하였고, 논리적으로 타당해야 인정받는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이전에 나는 진실은 존재하는지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진실은 사회적 산물로서, 누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책 속에서 니체는 ‘진리란 실용적 이유에 의해서 만들어진 힘의 일종’이라 하였고,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중 한명인 푸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특히 규정된 정답의 체계들은 인간 통제를 위해 문명적 사고로 만들어진 교묘하고 비가식적인 권력장치’라고 하였다. 이제 진실은 절대적인 정답을 갖지 않는다. 각자 규정하는 카테고리가 다르다. 각자의 알고리즘이 다르다. 각자의 해결 방법이 다르다. 정해진 정답은 없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소설 <바벨의 도서관>은 무한히 연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저자는 방과 방, 책장과 책장, 문장과 문장의 연결된 무한성을 통해 보여지는 도서관이 마치 인터넷의 메타포 같다고 말한다. 끝없이 타고 들어가 알고리즘에 의해 연결되는 우리의 지식과 정보 가치관 속 세상. 동의한다. 그 연결성으로 이어지는 무한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아이들을 교육하여야 하는가? 질문한다.
#2. 미네르바스쿨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교육은 이 세상을 어떻게 분석하고 다가가게 할 것인가? 저자는 맥락화 교육을 말한다. 맥락화 되지 않은 배움은 배움이 아니다. 배움은 세상을 향한 실천이어야 한다. 그래야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미네르바스쿨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이제 새로운 미래 학교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지구시민성’의 사실을 상기하고, 지구적 삶의 실제성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하는 교육이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열리고 있는 21세기.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적절히 분석하여 그에 맞는 해결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 그 안에서 경험을 체화하고 체화를 통해 확장하는 사람. 배움이 삶으로 연결될 수 있는 학습. 실제 그 현장에서 살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설계하고 해결책을 디자인할 수 있는 교육 실천이 미네르바 스쿨이다. 학생은 자신이 스스로 만든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수업은 발표와 토론 중심이며, 교수는 코치의 역할을 한다. 미네르바 에이전시의 행정은 졸업 후 첫 직장부터 CEO가 되기까지 직업적 커리어와 재능을 평생 관리하고 지원한다. 진로상담의 소극성을 넘어 학생의 직업과 삶에 대한 관리를 통해 평생학습기관으로의 역할을 다잡는다. 최근 몬드라곤대학교 또한 주목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3. 코딩보다 중요한 인문예술 수업
기계가 인간보다 뛰어나는 지점이 곳곳에서 확산되는 시기에, 다시 인문학에 대한 집중이 시작됨을 느낀다. 물론 인문학이 잊혀졌던 적은 없다(그렇게 믿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가치의 문제이다. 나의 가치와 철학이 중요해지는 만큼 윤리적 물음과 가치지향성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빌둥, 후마니타스 등으로 말하여 지는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 그 철학을 품은 예술 수업의 중요성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MIT공과대학의 음악수업을 예로 들어 1)문화역사 2)작곡이론 3)음악테크놀로지 4)연주실기를 통해 자신을 알고 세계 음악의 다양성을 알고, 기술을 익히며, 오케스트라를 통한 협력을 이루는 방식으로 온전한 한 교육의 덩어리를 경험하게 하고 있다. 기술을 사용함에 있어서 윤리성, 다양성, 타인존중, 협력 등이 존중되지 못한다면 기계만 살아남고 인간다움이 상실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 교육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지점이다.
#4. 학습과 영성
파커J파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영성에 대한 이야기 맺음이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아니 샤머니즘이 나의 종교라면 종교일 수 있으나, 샤머니즘에 대한 환상과 감상도 요즘에는 사실 시들하다. 결국 믿을 수 있는 흔들림 없는 존재는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 이 세상에 발을 디디며 살고 있는 내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근육에도 코어가 필요하듯이 내 정신에도 코어가 필요하다. 정신적 코어를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지금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교육이라 믿고 있다.
“우리학교는 사회에 무엇으로 기여하기를 원하는가?”
“우리학교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
“미래 학교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학교는 어떤 정체성을 원하는가?”
영국 교육표준국의 중등교육 기준에 관한 문서에 ‘영적 발달’에 관한 항목을 삽입했다고 한다. 성찰하는 인간으로서의 실존에 대한 물음의 답이 영성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힘(메타인지), 삶의 실천(윤리성, 기술디톡스, 야만자본주의 너머의 세상으로 건너갈 힘)을 키우기 위한 접근에 영성이 자리한다.
저자는 동화책 <벌거벗은 임금님> 속 아이처럼 키울 수 있는 교육을 꿈꾸는 것 같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가치와 감각, 생각을 믿고 의견을 표현한 아이처럼, 감각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논할 수 있는 환경을 이끌어 가는 교육. 그 안에서 추구되는 다양한 가치들의 비빔밥 같은 곳.
우리학교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내 아이는 지금 어떤 교육을 받고 있을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