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품평회 1. 별다방의 신메뉴. 캐모마일 허니 티 라떼
'나'라는 사람은 내가 소비하는 것들을 통해 보여진다. 자본주의가 갖는 가장 큰 미학이다. 나를 만들어 내는 것들은 결국 내가 소비하는 것들 속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돈을 만들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나를 꾸민다. 타인에게 나를 알리기 위해, 또는 나 스스로를 정립하기 위하여. 과장을 보태어 소비는 그만큼 물질만능을 살아가는 이 시대 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가치를 지닌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그랬다.
"선생님,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그 사람은 돈이 부족한 거에요."
여기 저기서 공감한다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금융자산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에 주식으로 수익을 얻고 있는 이 학생은 그 전과는 다른 빤짝빤짝한 눈망울로 적극적인 자신의 자산증식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이제, 자본주의의 품격(?)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은 결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나 또한 이제 그 명제를 과거형으로 치부한다.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나는 개인 상담을 받으며 나의 가치를 위안 받은 적이 있다. 8번의 상담. 1번에 10만원씩 총 80만원 어치의 상담을 받으며, 나는 평생 그 누구로부터 들을 수 없었던 공감과 위로, 자존감을 고양할 수 있는 격려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돈으로 나의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셈이다. 무료 버전의 AI보다 유료 버전의 AI 가 나에게 더 많은 세밀하고 친절한 상담을 해 주듯이 우리는 이제 많은 것을 돈을 통해 충족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돈을 주고 잔잔함을 샀다.
별다방에 캐모마일 허니 티 라떼가 출시되었다. 나는 캐모마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밋밋하고 살짝 비린내 나는 맛은 허브티 중에서도 가장 불호한 식품이었다. 은근한 밋밋함이 나에게 맞지않는 옷이라 생각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몇 해 전 스페인 여행을 다녀 온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아 마셔본 캐모마일 허니티 티백은 캐모마일의 비릿함과 밋밋함에 달짝지근함이 더해져 묘한 맛을 자아냈고, 꽤나 그 티백을 아끼고 아끼면서 마셨던 기억이 있다. 올해 초 스페인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마트에서 나는 그 캐모마일 허니티를 사느라 혈안이 되었었다. 그리고, 오늘 별다방에 이 메뉴가 공개되었다. (사실 작년에도 있었나? 눈여겨 보지 않았다. )
이 음료가 왜 오늘 나에게 눈에 들어왔을까?
내가 지금 갈망하는 그 마음 때문이리라.
여름, 가을,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이 생각보다 너무 힘이 든다. 자질구레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모두 여기에 쏟아부을 수는 없으나 희노애락애오욕이 요동치는 계절 한 복판에 내가 서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루에 스타벅스 에스프레소 7샷까지 들이켜도, 그렇게 심장이 벌렁대도, 아무 감각을 느끼지 못할 만큼 생각과 정신이 혼미해지는 시간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오늘도 그렇다. 여느 때 같았으면 그냥 스벅 벤티에 샷추가를 마시고 1시간 뒤에 추가로 1/2디카페인벤티를 마셨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은 바로 이 캐모마일 허니티라떼 벤티를 시켰다. 귀에서 들리는 음악은 김창완님의 앨범이다. 11월 27일에 공개된 앨범이다. 하루, 이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제야 보이네, 제비, 큰 나무, 어머니와 고등어, 열두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고, 백일홍 총 8곡이 수록되어 있다.
노래가사 하나 옮겨 적어본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사랑한다고
당신이 잠든 밤에 혼자서 기도했어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행복했다고
헤어지는 날까지 우리는 하나였다고
이제는 지나버린 시간이지만 가슴에 별빛처럼 남아 있겠지
이제는 가고 없는 날들이지만 꿈처럼 추억으로 남아 있겠지
그 분의 노래를 들으며 한 입 한 입 홀짝여본다.
잔잔함을 마시고 있다.
멜로디의 잔잔함이 캐모마일 향을 감싸고, 향 끝에 올라오는 꿀의 달콤함과 우유 거품의 부드러움이 내 입안을 유영한다. 혀끝으로 굴리는 그 향의 감촉은 잔잔함을 맛으로 느낀다면 이런 거겠구나 알게 해 주더라.
요란하게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라도 내리면 좋겠다. 험하게 덮쳐오는 감정들이 한 순간에 무뎌지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 무뎌짐을 간절하게 기다린다면, 캐모마일 허니티라떼를 추천드린다.
무뎌진 날로
무뎌진 감정으로
무뎌진 기운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잔잔함을 내면화하여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싶다.
지치기 싫어서
치이기 싫어서
나는
내가 되고 싶어서.
오늘
하루가
역시나
고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