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풍경 중 어느 때를 기억하세요?
오늘 일기예보에서 저녁 늦게부터 눈이 내린다고 합니다.
아침 등교지도를 하는데, 아이가 말합니다.
"선생님, 오늘 눈이 내린대요."
다 큰 남자 고등학생에게도 눈이 주는 설레임이 있나봅니다.
저에게 첫 눈으로 길게 남아있는 기억은
제가 시험보았던 1998년 11월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 다음날이었습니다.
시험 후 하루를 쉬고 학교에 온 날 펑펑 눈이 왔습니다.
지금은 연락이 뜸해진 친구와 눈을 보고, 눈을 맞았던 그날의 풍경이 어렴풋합니다.
고3. 세상이 그 시험으로 다 마무리 된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는 인생에서 또 다른 시험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진짜
다른 시험은 응시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습니다.
토익시험도 도전했어야 했고, 회사 입사 시험도 도전했어야 했고, 교사 임용시험도 도전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저 쉬운 길로 편한 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을 선택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 선택이 지금의 저를 만든 거겠지요.
후회가 되긴 합니다. 그 때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뭐, 그런다고 제 삶이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 선택에서도 힘든 점, 곤란한 점은 분명 생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안에서 이런 저런 고민과 상념들을 솎아내며 요란한 기억들을 추려내고 있겠지요.
뭐, 인생이 그런 거겠지요.
한편으로는 조금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가벼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저를 지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게 저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살고 있습니다. 그 방식은 온전히 자신의 것입니다. 다른 이를 설득시켜야 할 이유도 없고 다른 이에게 설득당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며, 그 방식의 다양성이 사회를 구성합니다.
관계, 네트워크를 중요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고 만들어가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쏟아지는 디지털 세상 속 타인의 삶은 우리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니까요.
그런데, 비교를 멈추는 순간, 나만을 오롯이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아,
오늘 첫눈이 내린다고 하니
주절 주절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2025년 달력에 더 이상 다음 장이 없네요.
오늘 내리는 첫눈에 무거운 나의 것들을 가득 담아
녹아 흘러질 수 있도록,
첫 눈에 함께 팔랑 팔랑 날려보낼 수 있도록
그렇게
올해의 첫, 눈을 맞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