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베이다

통증

by 봉자필름
섬초무침 (옴뇸뇸, 맛있어)

어제 시장에서 사온 섬초를 하루를 주방에서 묵혔다. 아침에 눈을 뜨니 시커멓고 커다란 봉지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부랴부랴 스뎅대야를 꺼내고 섬초를 한가득 쏟는다


그렇게 다듬기가 시작되었다. 도구는 과도가 아닌 부엌칼, 며칠 전 돈키호테에서 사온 카레에 넣을 소고기를 손질하느라 열심히 갈아놓았던 그 칼이었다. 시작은 순조로왔다.


우체국쇼핑에서 파는 섬초에 비하면 꼭지도 깨끗하고 흙도 거의 묻어 있지 않았다. 시장 섬초 퀄리티가 이렇게 좋다니, 역시 망원시장!! 하면서 대충 다듬었다.


헹구기를 두어번 이제 끓는물에 넣기만 하면 되는데 유독 반동강 안 나진 섬초 한뭉치가 손에 잡혔다. 잠시 그냥 데칠까 고민도 했다. 분명히 그냥 데치면 되었는데...


물은 끓고 있었고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한입에 먹기에 지나치게 클거란 생각에 결국 다시 부엌칼을 들고, 꼭지만 살짝 반으로 칼집을 내면 되는 거였는데...젠장 깊이 눌러버렸다.


마음은 급했었고 힘 조절은 실패였고 섬초 꼭지는 내 예상보다 얕았다. 결국 가운데 손가락에 느껴지는 비릿한 찌릿함에 전신이 전율했다.


젠장


물은 끓고 있는데...


단 0.000000001mm라도 닿지 않았다면 손가락이 베일 일은 없었을 거다. 그 찰나의 0.000000001mm 가 닿아 피를 보고 말았다.


멈췄어야 했는데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굳이 신경쓸 필요 없었는데

이미 물은 끓고 있었는데

기다릴 시간이 없었는데


피는 멈추었으나 베어버린 손가락에서는 심장박동 같은 작은 통증이 지속되고 있다.

신기하네.

이 정도 상처도 통증이 이리 반복된다고?


그러니 더 깊은 상처는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아...

일요일 오후.

낮잠이나 자야겠다.


그런데

섬초는 역시나 맛있었다.

아픈만큼 더 맛있지는 않았고

딱 섬초만큼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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