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사람을 위하여

인각실격을 읽고

by 인간 종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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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참 신기한 존재다. 분명 근육을 키우겠다고 마음먹었음에도 다음 날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고, ‘내일 피곤하니 일찍 자야지’ 다짐하면서도 엄지손가락은 쉴 새 없이 화면을 올린다. 고장 난 리모컨도 아니고 생각과 행동이 따로 놀 때가 태반이다. 그럴 때면 우리는 스스로가 좀 똑부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 언제나 한결같은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사람은 둘 중 하나다. 부처거나, 아니면 광인이다.


소설 《인간 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는 후자인 ‘광인’에 속한다. 그는 타인에게 일관되게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처절하게 애쓴다. 아버지가 선물을 물었을 때, 요조는 사실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기뻐할 만한 정답인 '사자탈'을 밤중에 몰래 수첩에 적어 넣는다. 체육 시간에는 일부러 엉덩방아를 찧어 반 친구들을 폭소하게 만든다. 그는 만들어낸 단 하나의 이미지, 즉 '익살꾼'이라는 가면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살해하는 존재다.


가면을 쓰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가면 또한 우리 자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필요한 모습의 가면을 골라 쓴다. 다만 오바 요조의 비극은 그 가면이 단 하나였다는 데서 기인한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교생 실습 당시, 나는 ‘교사’라는 키워드에 나를 고정해 두고 행동했다. 어느덧 나는 상상 속의 완벽한 선생님처럼 사고하고 말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퇴근길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 기묘한 감각이 몰려왔다. 방금 전까지 아이들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듯했던 뜨거운 열정은 간데없고, ‘내가 방금까지 왜 그랬지?’ 싶은 낯선 기분만 남은 것이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선생님’이라는 인격의 가면에 완전히 매몰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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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이 현상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머릿속에는 다양한 감정 캐릭터들이 있고, 평소에는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등이 번갈아 지휘대를 잡는다. 하지만 어떤 거대한 충격이나 강박이 닥치면, 다른 모든 감정은 축출되고 단 하나의 감정만이 지휘대를 독점한다. 오바 요조는 타인에 대한 공포에 질린 ‘불안이’가 지휘대를 쇠사슬로 묶어버린 상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관계에 따라 연출된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 가족, 그리고 연인 앞에서의 모습은 제각각 다르다.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가장 매끈한 몇 개의 자아만을 골라 보여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의 투박하고 다양한 자아들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한다. 낯가림이 해제된다는 것은, 내 안의 수많은 '나'들을 타인에게 들키기 시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은 애초에 복잡한 자아의 총체다. 하나의 일관된 자아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저 우리가 일관된 자아상을 유지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으니, 일관된 내가 있다고 ‘퉁치고’ 사는 것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진실된 모습은 다양한 자아가 안팎으로 미쳐 날뛰는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짜 인간의 존재 방식이며, 거기서 벗어나 일관성에만 집착할수록 우리는 부처나 광인, 즉 ‘인외(人外)의 존재’에 가까워진다.


‘나’라는 존재는 매끈하게 잘 닦인 조각상이라기보다, 여러 색깔과 이질적인 질감의 물감이 덧칠되고 뒤섞인 캔버스에 가깝다. 그 무질서한 덧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이라는 실체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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