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이 없어서, 스스로 일을 만들었다

대기업->출산->통번역대학원->번역가->?

by 케잇

"I was really going to be something by the age of 23."

(23살이 되면 뭔가 되어있을 줄 알았어.)

"Honey, the only thing you have to be by the age of 23 is yourself."

(23살때까지 되어야 할 것은 너 자신이야.)

- Reality Bites (청춘스케치)




제가 좋아하는 영화 <청춘 스케치>에서 위노나 라이더와 에단 호크가 나누는 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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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진로 고민으로 한참 방황하는 대학생이었습니다.

꼭 거창한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 너 자신이면 된다는 저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마음에 와닿았었는지요.


문제는......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계속 방황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것^^


30대 중반이 되면 회사에서도 탄탄한 입지를 쌓고 커리어를 착착 성장시키고 있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있을 줄 알았어요.


저는 원래 대기업의 해외홍보팀에서 해외홍보 담당자로 일했습니다.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홍보 자료를 영어로 번역하고, 기자 문의에 응대하고, 취재를 지원하고, 회장님 인터뷰를 준비하는 등의 일을 했어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적성에도 맞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후, 커리어를 바꾸기로 과감히 결심했습니다.

아이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하기로 한 거죠.



temp_1651123692048100.jpg 2023~2024 외대 통대


아이를 보면서 집에서 유연하게 근무를 조절하는 프리랜서의 삶을 꿈꾸며...(네 이거슨 환상이었습니다^^)

번역가로 집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번역 전공을 택했지만,

제가 입학하기 직전. "그것"이 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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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원래도 AI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진짜 현실화가 된거죠. 동기들과 매일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우리 뭐 먹고 살지..? 먹고 살 수 있을까."


시대가 시대인만큼 통대에서는 AI 활용법을 적극적으로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통대에 다니는 동안 AI와 각종 번역 툴을 사용하는 방법을 연습하면서

양질의 번역 일자리는 AI 발전 후에도 계속 수요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지만


2년 동안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정말 암울했던 것 같아요.


KakaoTalk_20260128_131057155.jpg 가끔 아빠와 함께 엄마를 데리러 학교에 왔던 아들.

아이를 키우며 새로운 커리어를 선택해서 뛰어들었고,

매일 3시간 이상을 통학에 쓰며 육아와 공부 사이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KakaoTalk_20260128_131213311.jpg 감개무량했던 통대 졸업식.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저는 프리랜서 번역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하우스 번역가로 먼저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교수님, 선배들의 조언이 있었지만, 저는 육아와 병행하고자 이 길을 택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프리랜서만을 생각했습니다. 또한 회사에서 쌓은 경력이 있었으니 어느정도 자신도 있었습니다)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저는 링크드인, ProZ.com같은 사이트를 뒤져가며 번역가 공고를 찾아서 마구잡이로 지원했습니다.

서류 전형에 합격하면 번역 테스트를 봅니다.

테스트에 합격하면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데요,

저는 졸업 후 네 곳의 번역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었고 그 중 한 곳에서만 일이 들어왔습니다....

세 곳은 테스트를 보고 계약까지 했지만 일거리가 없었던 건지 한 번도 연락이 온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한 곳에서는 비교적 정기적으로 일을 받았지만, 한번 다른 일(번역은 아니지만 통대 학위를 요구하는 일이었어요)과 겹쳐서 거절했더니 그마저도 완전히 끊겨버렸습니다.


하루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아이 등원 후부터 하원 전까지로 정해져있다 보니,

일이 겹쳐서 들어오면 눈물을 머금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네....프리랜서는 원할 때 일을 하고 자유롭게 스케줄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


일감이 들어오는 날만을 기다리며 손가락을 빨기도,

매번 새로운 번역 에이전시를 컨택하며 테스트만 주구창창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텅 빈 이메일함을 멍하니 새로고침하던 어느날, 결심했습니다.

남이 나에게 일을 주지 않는다면, 내가 일을 만들어보자.


저는 당시 5살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의 반나절 이상 "왜?"라는 질문에 답해주며 보냈던 것 같아요.


"엄마, 번개는 왜 쳐?

엄마, 우주의 끝에는 뭐가 있어?

엄마, 무지개는 왜 생겨?"


이런 질문들에 대답해주기 위해 함께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어요.


집에서 논픽션을 어렵지 않게,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방법 없을까?

그리고 여기에서 한 술 더떠서, 영어로 논픽션을 접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어는 제가 평생 업으로 삼아오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집에서 어린 아이에게 엄마표로 노출해줄 수 있는 '논픽션 영어 뉴스레터'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7월, 인스타그램에서 엄마표 영어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친동생과 함께 협력해서 '칫챗레터'를 런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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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를 바로 실행에 옮겨서 우당탕탕 시행착오를 겪으며 달려왔어요.

논의할 일이 있으면 동생과 카톡 및 전화로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빠르게 수정하며 조금씩 칫챗레터를 함께 빚어나갔습니다.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시작하면 영영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는데, 옳은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7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28편의 칫챗레터를 발행했고, 매달 구독자는 천천히나마 우상향하고 있어요.




SE-23133e00-8b83-4049-824d-433d31c8cf5c.png?type=w966 처음으로 올라온 리뷰를 봤을 때의 그 기쁨이란..!



매일 일감 게시판을 뒤적거리고, 이메일을 업데이트하며 마음 졸이던 시간에 비하면

저만의 일을 더 잘 키워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이 새롭고 진귀한 경험이랍니다 :)


아직은 소소하지만, 엄마표 영어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한번씩은 들어볼 법한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꿈이에요!

회사라는 울타리, 그리고 대학원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벗어나서 오롯이 '나'만으로 승부하기가 겁이 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회사와 분리될 날이 올텐데,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나갈 기회가 조금 일찍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기에 칫챗레터를 키워가며 겪는 고민이나 성장통, 감정등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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