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 <공정하다는 착각>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에 따른 자본의 배분 문제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완독 한 지금 저는 독자로서의 관점을 덧붙여 보려 합니다. 다양한 문제와 수많은 논쟁이 얽혀 있는 공동체를 위한 옳은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아무도 완벽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저는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오해를 들추어낸다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배분이 공정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분쟁을 피하고 권리를 침해받지 않기 위함이라는 데에 대부분 동의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는 80억이 넘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은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행복 중에는 ‘같은 인간으로서 권리를 나누는 것’이 있고, 그래서 평등이라는 개념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얻을 기회가 공정한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룹니다. 여기서 서로 충돌하는 주장들은 “생물학적 능력이나 가정환경에서의 핸디캡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리고 능력과 평등의 기준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 것인가.” 등입니다. 이런 쟁점들에 대한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있어. 이를 존중해야 해.” 그런데 이 말은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공적인 것’에 대한 오해에서 이 모든 문제가 비롯된 것 같습니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룬 이유는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 생각합니다. 작은 공동체는 발전하여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국가를 떠올리면 거대하고 차갑고 냉혹하게 느껴집니다. 그러한 불쾌한 느낌으로 인해 사람들은 공동체의 진짜 의미를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어떤 상황이라도, 예를 들어 세상의 모든 국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공동체가 곧바로 등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의 정수입니다. 그러기에 공동체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사적인 것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변동성과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 만들고 일궈낸 것이 공동체이고 그 공동체를 운영해 가는 시스템으로 이바지하는 것이 바로 법과 제도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인간의 본능과 필요를 추구하고 충족시켜야 하는 가장 사적인 영역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람들은 공동체를 마치 신적인 존재 같이 우상화했고 법과 제도는 글자로만 보게 되었습니다. 게으르게 만들어진 법률로 인해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고 ‘나와 너’를 별개의 존재들로 공식화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이로써 제가 보기에 공정이 훼손된 것입니다. 샌델이 롤스에게 무연고적 자아라며 비판한 것과 결이 비슷합니다.
책에서 주장하는 자본을 나누는 방법의 하나는 환경적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생물학적 재능이나 가정환경 등과 같은 핸디캡을 고려하여 불리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완전 평등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정작 생물학적인 재능보다는 가정환경에만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려는 기회로서 ‘복지’는 자본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재능적 영역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고 있습니다. 이는 공동체의 발전을 구조적으로만 보려는 무관심에 의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 찾아야 합니다. 재능적 영역은 개개인의 개성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해 느끼는 정도, 감정의 깊이, 원하는 것 등은 생물학적 영역으로, 선천적으로 정해집니다. 이것을 외면하는 것은 눈을 감고 세상을 보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공동체에서의 일을 융통성 없는 글자로 봅니다. 자신들이 직접 쓴 법과 제도를 자신들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글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동체가 ‘공’과 ‘사’를 서로 구분함으로써 모든 것이 붕괴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평등이 정말로 논리적일까요? 모든 사람들은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해져야 합니까? 자신에게 개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모순되게도 차별 없는 평등을 주장한다고 저는 느낍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법과 제도가 글자로만 남는다면 더 이상 인간의 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맞춤형 자본의 배분입니다. 일률적인 기준이 유지되어서는 안 되며 그때그때 판단하고 합의해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가장 합리적인 공정을 실현하려면 국가는 어느 때보다 단결되고 강력해야 하지만, 법과 경제는 유동적이어야 하며 변화에 익숙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꿈같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저는 더 꿈같은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생각을 요약하면 ‘국가는 공동체임에도 그 어느 것보다 사적이어야 한다’입니다. 그런데 자본 분배의 공정을 위해 어느 것보다도 공적이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국가 공동체의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완벽한 공정을 위해서는 그것의 중재자가 자본에 연루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은 공적인 것 이외에도 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불공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 지도자는 폭정의 위험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지도자의 모델을 플라톤이 말한 ‘철인정치’에서 찾았습니다. 철인 지도자에게 허락되는 것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권력 그리고 지식과 옳음을 향한 욕구입니다. 이런 지도자만이 진정한 공정의 중재자이고 공적이면서 사적인 국가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공정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수한 공동선을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등과 이기심은 모두 '공과 사'를 탐하는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공정함은 어떤 절대적 기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특성도 억압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정함에 대해 샌델은 훌륭한 공동체주의 철학을 제시하였으며 저는 이를 참고하여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공정함은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의 논의에 대해서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지식의 장막’ 속에서 더욱 융통성 있는 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으며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