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를 넘어서다

독서 감상문 - <이기적 유전자>

by 오또쭈

<이기적 유전자>는 세상을 해석하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다양한 개념들을 설명하지만 절대로 개념서로만 끝나면 안 됩니다. 과학책이지만 다양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읽어야 하며 수백 권의 책들과 함께 읽혀야 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설명하는 과학적인 통계보다는 제가 그 내용을 ‘인간’에 대입하며 탐구한 것에 대하여 독서 감상문을 남겨보려 합니다.

저는 도덕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현대인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덕을 알아야 하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은 도덕이 유전자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도덕은 고민과 성찰을 거치지 않고 종 고유의 특성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기 위해 책의 핵심적인 개념인 ESS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을 대입하여 봅시다. 오래전 수많은 인류 종이 등장하였고, 이들의 유전자는 아주 다양했습니다. 원시인류는 특유의 능력인 이성으로 다른 포식자들과 경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번영하기에 부족했습니다. 인류 종은 하나의 특성만으로는 상위 포식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를 극복한 인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야 했습니다. 현재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ESS를 통하여 사회적 동물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간 인류 종만이 성공한 것이 아닐까요? 사피엔스는 지성과 더불어 강력한 사회성이 있고 그것이 생존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추론을 통해 이 뛰어난 사회성을 도덕과 연결 지었습니다. 도덕이라 하면 남을 사랑하고 주변인을 소중히 여기며 이타심을 발현하는 것, 또는 그러한 것을 강조하는 종교들이 주로 떠오릅니다. 도덕을 왜 지켜야 하느냐 물으면 사람들 대부분은 ‘행복해지며 사회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기에’ 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통 욕망이나 범죄를 악으로 생각하고,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악도 선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둘 다 행복한데도 선에만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여기서 뛰어난 사회성을 가진 사피엔스가 번영한 데에는 선이라는 생존 전략이 이바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도덕과 선은 강하고 옳게 느껴질까요? 욕망과 사랑을 악과 선으로 분류하려는 시도는 왜 일어날까요? 저는 악을 탄압하고 선을 추구하도록 사람의 이성을 유도하는 유전자가 생존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도덕은 사회성에 효과적이고 사회성을 잘 갖춘 인류가 살아남았다’라는 말이 됩니다!

우리 생각의 모든 것은 유전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도덕을 지키는 것이 모범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이성을 지배하려 드는 유전자의 폭압적이고 독재적인 성격으로 인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도덕의 반대인 악의 본질도 다르지 않습니다. 유전자는 선과 악을 창조하여 이를 강요하려 함으로써 스스로 영원불멸하게 존속하려 합니다. 저는 이 굴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전자에 반항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유전자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이성이 순수하게 주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였습니다. 공공의 이익과 이타성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건 어떨까요? 물론 유전자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타성에 대한 오해를 설명한 책의 제10장을 읽어보면 유전자는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기적 이게도 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하지만, 그럼에도 이타성을 추구하는 것은 이성이 유전자에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최고 권력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생각의 의무를 넘긴 것뿐입니다. 유전자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지만 이성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유도했고, 이성의 행동은 유전자에 유리하도록 조작되었습니다. 유전자는 사람을 이익을 위한 행동을 찍어내는 노예적인 공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이러한 유전자의 횡포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사와 통제 바깥에서 우리를 조종하는 유전자를 우리의 일부가 아니라며 부정해보고 싶습니다. 유전자를 전적으로 우리와 분리하거나, 우리가 그 유전자를 완벽하게 통제할 방법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영감을 받아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 유전자를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정적인 사랑은 엄격히 배제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사랑은 사람 개개인의 특성 그 모든 것을 공감하거나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이익은 없습니다. 사랑으로 인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다만 중요한 점은 유전자가 유도하는 선악의 관점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극악무도한 전범이라 평가받는 인물들과 살인을 밥 먹듯 하는 사이코패스도, 심지어는 최대의 폭군들인 유전자조차 사랑하는 것이 유전자를 향한 최대의 반항일 수도 있습니다. 무색채의 시각에서 어떠한 이익을 위한 목표 없이 모든 감정과 관념을 배제하고 생각을 하는 상태야말로 “인간이 ‘생존 기계’에서 ‘생각 기계’로 바뀌어 유전자가 오히려 우리의 노예가 되는 방법”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흔히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주장하지만,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인 觀만 버리고 정작 선악 그 자체인 念은 남깁니다. 제가 이 독서 감상문을 쓰며 정리한 것은, 유전자의 이기적임이 아닌 인간 이성의 이기적임이 유전자에 굴복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선, 악, 도덕, 가치, 이익은 “의미”이며 이것들은 유전자의 이기심이 만든 것입니다. 반면 이해를 통하여 의미보다는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유전자에 봉사하지 않는 이성의 이기심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다양한 것에 기댑니다. 그리고 이는 허무하며 굴복하는 것입니다. 존재에만 집중하는 사랑이 압도되지 않는 사랑입니다. 이렇게 저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후, 이기적 유전자를 넘어서서 최고의 나 자신이 될 방법에 대해 성찰해 보았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사의 핵심을 꿰뚫는 데에 큰 영감을 주는 좋은 책이라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