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자는 병자인가?

독서 감상문 - <메밀꽃 필 무렵>

by 오또쭈

허 생원의 인생을 평가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을 평가하기 전에 객관화할 요소를 발견했다. 이 책은 간단하고 쉬운 방식으로 생명의 본질을 드러낸다. 나는 이 짧은 이야기를 읽고서도 ‘실패한 삶’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덜 떨어지는 인격에 대하여 혐오감이나 동정을 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찾을 수 있었다.



책에서 아이들은 늙은 당나귀에게 왜 다른 당나귀처럼 굴지 않느냐며 조롱한다. 인간의 순수함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책 속 요소를 분석하며 모든 인간, 그러니까 감정이 있던 없던 똑똑하건 멍청하건 서로의 이해관계를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았다.



나는 이를 분석하기 위해 두 개의 대조군을 설정했다. 하나는 허 생원의 늙은 당나귀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의 비교 대상인 젊은 당나귀이다. 나는 당나귀들에게 인간을 대입해 보았다. 노인은 자신보다 몇십 살은 어린 여인과 연을 나눈다. 반면, 젊은이는 그러한 행태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사회적인 통념을 찾으며 자신은 늙어서는 그러지 않겠다 다짐한다. 노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수는 노인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감정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감정은 삶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감정을 근거로 혐오감이 든다고 그 대상을 비난하거나 격하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



인간은 대부분 비슷하고 다름은 각자의 극히 일부이다. 선악울 구분하고 그것을 이유로 혐오감을 드러내는 행위는 선천적으로 그런 행위를 선망하는 이들에게나 의미 있을 뿐이다. 허 생원에 공감하려는 이들에게 상대방을 평가하려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는 떠돌이이며 경제적인 수완도 없다. 그렇다고 그것에 대해 격려를 드러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다양성의 존중’을 중요시 하나, 이와 같은 말들은 설득력이 부족하고 실효성도 없다. 다양성을, 감각을 ‘보장’하는 것, 인지를 넘어 사회 속에서의 이상의 실현을 위하여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가 최고의 자신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 주위의 수많은 허 생원 같은 사람들을 보살피는 방법이며, 아가페에 근접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이러한 행동을 실천했을 때 본질적인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고 대부분은 각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나 그게 무엇이든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건강한 모습이며, 이는 스스로의 삶을 확보하는 데에도 안전한 보험이기도 하다.



나는 허 생원이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한탄하는 것을 보고 인류에 대해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그래서 정상성의 기준’에 대한 문화와 사회적 통념을 개변시켜 사회적 소수자의 자격지심과 불행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모색해 보았다. 또한, 사람들이 늙은 당나귀의 행동을 동물이라 정당화하면서, 인간이 그와 같이 행동하면 ‘짐승’ 같다고 비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평범해 보이는 단편 소설이 내게 준 깨달음은 상당했다. 사람들은 서로 그리 많이 다르지 않기에 감각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과 실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던 까닭은 이 책이 인간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문학 독서를 하는 이유가 이러한 영감과 통찰을 얻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