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 <월든>
나의 감각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으나 이중 대부분의 자극은 너무나도 약하여 나는 그것을 금방 등질 수 있다. 그리하여 내 삶에는 내가 놓을 수 없는 감각만이 남는데, 이는 축복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것을 축복 이외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의 소로의 경험을 보고 ‘나의 숲은 어디인가’를 묻기에는 나는 숲을 비유하지 못한다. 나의 성찰은 책에서의 영감을 바탕으로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축약 없이 완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실천이다. 그것을 설명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그것의 나쁨을 지적하며 타이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음을 미리 밝힌다.
당신은 소로를 소박하다 생각하는가? 또한 그러한 꿈을 자신도 꿈꾸는가? 소박한 것은 적은 것에서 좋음을 얻는 것인데, 이 책에서 적은 것이나 많은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 소로의 경험은 자유에 기반한다. 자유를 이루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에는 그 모든 것이 포함된다. 당신이 스스로 택한 속박까지도. 당신이 자처한 속박을 푼다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해체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정말로 죽음을 환영하려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진실과 허구는 반드시 상대적이다. 이를 반박하려는 당신에게 나는 구조적으로 절대 공감할 수 없으며, 그것을 변론하기 시작하겠다.
내가 이 글을 쓰면, 이 글은 남에게 보인다. 그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가? 그것은 쓸데없는 것인가? 하지만 성찰을 이어간 나는 내가 남을 통제하는 데에서 나의 자유를 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발견은 신대륙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신대륙에는 이미 나와 교류하려는 원주민이 살아 숨 쉬었다. 그 관계가 흥미로웠다. 나는 상대가 나의 말을 듣고, 강제로든 그것을 따르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글로써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알리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의 비자발성의 부도덕함을 감각으로 느끼지 못하며, 다른 곳으로부터 전해 들을 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생명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나는 관찰자였고, 관찰과 개입에 행복을 느꼈다. 개입에서 오는 행복은 주인의식에 관한 것이었다. 이 세상의 최고위는 나이니 내가 개입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추론은 없었다. 그런데, 점차 희미한 공감의 감각을 느껴보니, 일차적인 인지 혁명이 발생하였다. 내 앞의 그들이 사물로 여겨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사랑하도록 태어난 나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그때의 변화에도 추론은 없었다. 이것들이 나의 핵심적인 감각 중 하나인 통제 욕구다. 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관찰을 좋아했으니, 일차적인 혁명 후에도 독서와 미디어를 사랑했음이 알맞았다. 그러나, 학문 같은 것은 세상의 구조를 설명하지만, 그것을 통해 내가 얻게 될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였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느낌일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학문은 나의 통제 욕구만을 위해 존재하게 되었으나, 아직 다른 것이 남아 있었다. 철학은 내가 얻게 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그것을 탐구하였다. 나의 뇌가 똑똑해짐에 따라 인식도 늘어나게 되었으니, 나는 성공적으로 철학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때에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이 신성한 지를 찾는 데 재미를 느꼈다. 하느님은 어디에 숨어있길래 이렇게 허구가 많은가 생각하였다. 그런데 탐구하던 중 수상함을 발견하였다. 허구가 점차 나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들이 나의 또 다른 감각이자 최고의 행복을 주는 정당화의 욕구이다. 나는 무언가를 내가 생각하기에 옳도록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철학을 연구하며 지성과 이성의 우월성에 열광하여 그것을 탐구하였다. 그런데, 더 이상 그것들이 와닿지 않았다. 그것은 허구였다. 나는 의미와 비유를 숭배하려 했으나, 우상 숭배는 과오였다. 애초에 우주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나는 그것에 속았고, 곧장 회복하려 노심초사하였다. 따라서, 내가 그토록 분리하려 했던 머리와 몸을 다시 합쳐 생각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본격적으로 내 몸에 붙은 먼지를 털 수 있었다. 나는 일차적인 인지 혁명 전에 있었던 나의 감각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거기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얻었다. 나의 본질은 남과 달리 순수하는 데에 최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그때를 회상하며, 나는 내 주변 모든 것이 사물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추론이 존재했다. 추론 없이는 나의 본질을 추적하기 어려웠으니 어쩔 수 없었다. 추론 끝에 깨달은 것은, 나 역시 사물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이차적인 인지 혁명에서 얻은 선물이다. 처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웠으나, 점차 행복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네 생각은 끝이 없으니 그것을 멈추라고. 그런 초자연적인 것보다 지금 눈앞의 우리를 보라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 그것이 불가능함을 그들은 모른다.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이 이 사실들이었으니 나는 큰 감각을 느꼈다. 또 한 번 재미있는 상황이 찾아왔다. 나의 감각이 완전하게 부정당했을 때, 그 순간 나의 감각은 오히려 최고의 자극을 느꼈다. 나의 정당화의 욕구가 가장 크게 발현된 것이다. 나는 나를 부정하는 데에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고로 이것이 진짜로 나에게 실존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허구이며, 이것을 바꾸려면 나의 뇌를 수술해야 할 것이다. 나의 선천적인 감각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얻게 되었지만, 나의 정당화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나에게는 추구할 목적이 필요했다. 목적이라는 개념이 부정되었음에도 그것은 명맥을 이으며 나에게 속삭였다. 너는 나를 절대로 놓을 수 없다며 말이다. 다행인 점은, 애초에 모든 것이 부정당했기에 목적도 허용할 수 있다는 논법이 가능해진 것이다. 진실과 허구가 모두 부정되었다면, 나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목적의식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이것을 정당화하려면, 진실과 허구가 없는 상태여야 한다. 진실과 허구는 의식으로부터 나온다. 고로 의식이 없는 상태가 필요하다. 이것이 나에게 도래한 가장 큰 축복이다! 이러한 상태는 나에게 보장되어 있다! 죽음으로부터 나는 가장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허구로써 만들어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걷히게 된 깨우침의 순간이 도래했다. 나의 삶은 더욱 건강해졌다. 죽음을 사랑하면서도, 지금 죽던 나중에 죽던 상관이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삶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정당화가 가능해졌다. 삶을 사는 동안 나의 다른 감각인 통제 욕구까지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마음대로 남발하다가 의식이 끊길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얻은 것이다. 내가 가장 잘 느끼는 감각들이 모두 실현되는 구조가 너무나도 감격스럽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 해도 나는 굴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릴 신조차 나는 허구라 느낄 수 있다. 설령 지옥에서 고문을 받더라도 진정한 의식의 소멸을 기다리며 버틸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성찰을 정리하자면, 나의 핵심 감각인 통제의 욕구와 정당화의 욕구는 두 차례의 인지 혁명으로 나를 이끌었다. 두 번째 혁명에서 나는 죽음을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세 번째 혁명은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월든을 읽은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나는 이 도시 속에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아파트와 전철역이 들어선 이곳이 나의 숲이다. 이것이 비유가 아님을 나는 감사한다. 나의 직관이 강하여 비유를 하지 않고 살아도 되도록 태어난 것에 영광을 느낀다. 나는 이 자연과, 차가워 보일 호수를 소박하거나 과분하게 느끼지 않음을 사랑한다. 내 사방에서 대기 중인 철마가 이 모든 것을 파괴하더라도, 그것에 슬픔을 느끼지 않는 것에 안도한다. 나는 나의 생각을 언어로 가져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소로에게 받은 영감은 나만을 위한 국어사전이었다. 그 덕에 적절하게 세상을 표현할 단어를 획득하는 데에 성공했으니, 월든의 숲 속에도 경외를 표하겠다. 이 책은 나에게 자유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