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고 가정적인 남편과 살면서, 주말마다 시부모님의 육아 도움을 받고, 경제적으로 큰 부족함 없이, 안정적인 복직까지 보장받으면서, 순딩이 아기를 키우는 생활. 이게 요즘의 내 삶이다. 도대체 우울해할 이유가 없는 삶을 살면서 나는 왜 우울할까?
글이 읽히지도 써지지도 않아서, 미처 다 읽지 못한 책과 완성하지 못한 글이 쌓여있다. 만들다만 포토북은 이제 완성해야 할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야심 차게 시작한 영단어 스터디는 버겁게 진도만 따라가고 있다. 운동하면서 영어 말하기를 연습하려던 계획은 지키지 못한 지 오래다. 아기가 잠들면 바쁘게 보내왔던 나만의 시간에 점점 의욕이 사라진다.
육퇴 후 밤 10시가 다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누워만 있다가 문득, 세탁기가 한참 전에 다 돌아간 것을 깨달았다. 아, 육아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아기 빨래를 제 때 널지 않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빨래를 널고 나니 소독된 젖병과 이유식 용기들이 보인다. 얼른 조립해 둬야 내일 또 쓸 텐데. 그렇게 조립까지 하고 다시 눕고 말았다. 핸드폰으로 의미 없는 기사들, 정보들을 뒤적거리면서 '육아 우울, ' '우울증' 같은 단어들을 검색해 본다.
아이돌들이 공인으로서의 삶의 어려움과 힘듦을 토로하는 인터뷰에 꼭 달리는 댓글이 있다. '본인이 선택한 일인데 책임져야지, ' '대신 돈을 많이 벌잖아, ' '너만 힘든 것 아냐' 등의 댓글이다. 그런 댓글들을 보면 다들 힘들구나 싶으면서도 '어쩜 사람 마음을 저리 몰라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강도의 힘듦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다, ' '누구나 힘든 환경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든 힘들 수는 있다'라고 대신 변호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다가 어렴풋이 내가 왜 우울한지 알게 됐다. 아기가 크면 클수록 해내야 할 책임은 많아만 지고, 나는 여전히 나에게 엄격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꼭 내가 싫어하는 댓글처럼 말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육아인데 힘들어하지 말자, '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육아하고 있음을 감사해야지, ' '나보다 힘든 엄마들이 더 많을 거야.'라고.
나 스스로의 마음에 더 공감을 해줘야겠다. 내가 힘들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우울한 날이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그걸 인정한 못난 엄마라고 또 자책하지 말아야겠다. 뻔한 말이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뜰 테니까 힘을 내야겠다.
내일 가야 할 문센 수업이 생각나서, 내일 만들어야 할 이유식이 생각나서, 내일도 나만 바라보고 있을 아기가 생각나서, 밤 12시에야 씻으러 억지로 몸을 일으키면서 그렇게 다짐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