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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Feb 08. 2024

프로젝트 수업

교직 10년 차의 첫 도전

첫 수업으로 TED 수업을 2차시 진행 뒤, 그다음 수업에서도 주제만 바꾸어 TED 수업을 4차시 더 진했다.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을 수 있는 주제로 신중하게 골랐다. 그 결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마시멜로 챌린지(TED 영상 링크), 그리고 재능과 노력에 대해 시사하는 그릿(TED 영상 링크) 수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여러 주제를 다룸으로써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을 자극하고 또 다음 주제를 기대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TED 수업은 단점도 있었다. 바로 TED 주제 하나가 끝날 때마다 수업 흐름이 끊기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학기 전체의 큰 학습 목표를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괜찮은 주제의 TED 영상을 골라 수업을 구상했기 때문이다. 매번 주제를 바꿔가며 적절한 TED 영상을 찾고 새로운 수업을 만드는 것도 교사로서 점점 부담이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외고 특성상 학생들이 이미 TED 영상에 노출이 많이 되어있는 것이었다. 하루 시간표의 반이 영어 수업인 학생들 입장에서는 영어 선생님들이 어쩌다 한 번씩만 활용해도 하루종일 TED를 하는 느낌이 들 터였다. 실제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외국어고등학교가 아니라 TED 고등학교라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수업은 뭘까? TED 영상 학습이 목표가 아닌 수업, 하나의 학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주제를 깊게 다루는 수업, 그리고 한 번 구상한 수업의 틀로 2주 가까이 진행할 수 있는 수업. 결국 이번에야말로 '프로젝트 수업'을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직 10년 차가 되도록 프로젝트 수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데는 나름의 변명이 있었다. 바로 동료 교사와 수업이나 평가에 대해 협의할 시간이 모자라다는 것이었다. 영어는 배당된 수업 시수가 많아 대개 한 과목을 여러 선생님이 함께 맡는다. 하지만 매해 2월의 첫 출근부터 개학까지의 시간은 짧고, 개학 후에도 학교에서 다 같이 모이기는 어렵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별다른 의논 없이도 서로 진도 맞추기가 용이한 교과서 독해 위주로 수업을 하고, 프로젝트는 매 학기 수행평가를 위해 2~3차시로 이벤트처럼 진행했다.


이런 현실을 반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프로젝트의 모든 차시를 미리 나 혼자서 구상하고 준비해서 동료 선생님들에게 함께 하자고 설득하고, 모두가 동의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용기도, 실력도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나에게 어쩌면 외고는 선물처럼 온 기회이자, 더 이상 '변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막다른 길이었다. 제대로 된 프로젝트 수업이 뭔지도 모르는 초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수업에 담자는 생각은 프로젝트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등으로 인하여 난민의 거취 문제, 국가적 지원 등이 크게 이슈화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외고 학생들이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장차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난민'을 프로젝트 수업의 큰 주제로 골랐다. 관련 도서와 영상, 여러 선생님들의 공유 자료를 참고하여 아래와 같이 총 6차시의 수업을 구상했다.


1차시: 난민 이동 간접 체험

2차시: 난민 관련 어휘 학습

3차시: 난민 관련 기사 독해

4차시: 에세이 주제 선정

5차시: 에세이 초고 작성

6차시: 에세이 완성본 제출


직접 난민이 된 상황을 가정한 1차시는 학생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수업 중 하나였다. 반마다 모둠을 나누어 각자 한 가족의 구성원 역할을 맡게 했고, 잠시 뒤 전쟁이 난 우리나라에서 급하게 떠나야 하는 상황을 주었다. 소중한 물건 중 어떤 것은 버려야 하고, 누군가는 배에서 내려 남아야 하는 등 끊임없이 주어지는 급박한 상황들에 학생들은 진지하게 몰입했다. 할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한 학생이 "젊은 너희들이 살아야지."라고 말하며 교실 뒤로 빠졌을 때 아마 아이들은 웃으면서도 무언가를 느끼지 않았을까?


2~3차시는 난민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을 쌓는 시간이었다. 어휘 학습과 기사 독해는 쉽게 지루해질 수 있지만, 활동이 주가 되는 프로젝트 수업이라도 인풋(Input)이 있어야 아웃풋(output)이 잘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에세이 작성 수업을 위해서 배경 지식은 꼭 필요했다. 대신 모둠원들과 함께 어휘와 기사를 공부하고 의견을 발표하도록 하여 수업의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난민 프로젝트 수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에세이 쓰기는 사실 제대로 하기에는 3시간으로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있었고, 구상한 총 6차시의 수업만으로 3주 넘게 시간이 소요됐다. 프로젝트가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에, 동료 피드백 과정을 생략하고 교사 피드백만 제공했다. 그리고 에세이의 분량을 제한한 뒤 제출 여부만 평가에 반영했다. 제대로 된 과정중심 쓰기는 아니었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내 맘대로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았지만, 일단 해보겠다는 용기를 낸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많이 고민하고 준비했던 수업인 만큼 학생들의 피드백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개념을 확실히 알고,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라는 딱 원하던 피드백이 나와 기뻤다. 앞으로의 프로젝트 수업이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두려워도 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기분이다.







(참고: 외고 첫 근무 시절을 추억하며 씁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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