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도 그렇다. 누군가와 같이 먹는 게 아니라면 달걀 프라이 하나 부치는 것도 인덕션 앞에서 고민을 한다. 하지만 가족과 먹어야 할 때는 ‘달걀 프라이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지’가 된다. 의식하지 않으면 내 몸인데도 내 몸을 위한 좋은 음식을 생각하기보다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찾게 된다. 참기름에 간장 혹은 고추장과 김, 참치통조림 같이 별다른 조리 없이 쉽게 뚜껑 열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말이다.
대학교를 다닐 때도 편의점 빵이나 삼각 김밥 하나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 적이 많다. 하지만 집에서 가족과 먹을 땐 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면 가족들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엄마도 가족들이 집에 없고 홀로 식사하실 때면 마른반찬 몇 가지로 단출하게 드셨다. 왜 다른 요리 없이 단출하게 드시는 걸까? 궁금함에 여쭈어보니 “혼자서 먹으니 그냥 빨리 먹고 쉬려고 그러지.”라고 하셨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맛있는 걸 해주는 게 엄마의 일이지.”
내가 기운이 없거나 아플 때도 엄마는 늘 먼저 내게 다가와 물으셨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음식은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엄마의 사랑 표현이자 사랑 그 자체였다. 그리고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엄마의 즐거움 중 하나이며 행복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먼 타지에서 ‘엄마의 밥’을 그리워하는 것은. 결국 따뜻한 엄마의 사랑이 그리운 것이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소리와 구수한 냄새로 가득 찬 집은 떠올리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노먼 록웰 1943년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왜 맛있는 걸 먹으면 가족이 생각나고, 가족과 함께 일 땐 맛있는 걸 먹으려 할까를 생각하자 <궁핍으로부터의 자유>가 떠올랐다. 추수감사절 식탁에 둘러앉아 칠면조를 맞이하는 가족들은 하나같이 밝고 즐거워 보인다.
이 작품의 제목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발표한 4가지 자유 연설, ‘언론과 의사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에 영감을 얻은 것으로 4가지 자유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미국인의 일상으로 각각 표현해 낸 것 중 하나다.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이라는 책에서 말하길 이 그림은 “궁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록웰의 생각도 함께 담아낸 작품이라 한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는 가족 모두가 식사시간을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였고 그다음 커다란 칠면조가 눈에 들어와 화려한 식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의 저자는 이 작품에서 록웰이 욕심부리지 않고 술과 고기, 케이크, 과일 등을 일부러 부족하게 그렸고 대신 칠면조만으로도 식탁이 풍성해 보이도록 연출했다고 한다. 다시 보니 정말 칠면조 말고는 눈에 띄는 음식이 없었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적정한 물질적 풍요’에 감사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이었다. 우리 집의 밥상도 늘 풍족한 편은 아니지만 돼지김치 찜에 마른반찬 몇 개만 있어도 풍요로움을 느꼈다. 그저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행복을 느끼는 데는 대단한 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먹을 때 느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은 같은 행복이었다. 바로 "가족들은 그저 함께하기에 행복해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제 '가족과 맛있는 걸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건 단지 가족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과 죄책감에서 드는 생각이 아닌,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내 행복 중 하나였기에 그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족과 관련된 상담 프로그램이 많아진 요즘, 때로 어떤 상황이 내게 심리적으로 무언가 결여되어 있어 나타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너무 복잡하게만 생각하려 했던 게 아닐까?
사실 가족을 사랑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