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외가와 친가 할머니 두 분을 잠깐 우리 집에서 모시게 된 적이 있다. 할머니들에게는 약간의 치매가 있었기에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내가 집에 남아 두 분을 모셨다. 하는 일이라고는 화장실 가실 때 도와드리는 것과 간식이나 약을 챙겨드리는 것이 다였으나 바빴다. 고작해야 할머니 두 분인데 뭐가 바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었다.
외할머니인 정분 할머니는 자연과 음식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좋아하셔서 주로 ‘자연인’을 틀어드린다. 반대로 친가의 홍순 할머니는 옛날부터 춤추고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을 좋아해 ‘가요무대’가 아니면 보지 않으셨다.
한 분 만 계셨을 적에는 이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정 반대 취향을 가지신 두 분이 한 집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바야흐로 정분 할머니와 홍순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부엌에서 밥을 먹고 난 뒤 할머니의 발걸음이 바쁘다. 거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텔레비전 리모컨을 사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승자는 홍순 할머니다. 76번을 입력하자 집안에 뽕짝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분 할머니는 잠시 거실에 머물다 곧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면 나는 내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챙겨 들고 나와 정분할머니 옆에 앉는다. 펼쳐 든 노트북으로 유튜브에 들어간 뒤 할머니를 부른다.
“할머니~ 할머니 좋아하시는 자연인 보세요.”
그러면 자리에 누워있던 할머니가 곁눈질로 모니터를 쳐다보며 말한다.
“안 본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말한다.
“할머니 이것 봐요! 맛있겠다.”
그제야 할머니의 시선이 모니터에 정착한다. 그러면 나도 이제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을 빠져나온다. 홍순 할머니는 가요무대에 빠져든 듯 고개까지 빼들고 열혈 시청 중이시다. 두 분의 여가시간이 잘 돌아가는지 확인한 후에야 나는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정분 할머니가 이길 때는 어떠냐고? 소파에 앉아있던 홍순 할머니가 심드렁하게 한 마디 던진다.
“재미없다.”
그리고 동의를 구하듯 나를 쳐다본다. 나는 눈을 피하며 말한다.
“이것도 재밌어요. 이거 보고 조금 있다가 가요무대 틀어드릴게요.”
최대한 두 분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돌아가며 볼 수 있도록 조율해 드리는 게 내 역할이다. 또 한 번은 그릇을 정리하는 방법이 달라 옥신각신하시는 두 분을 말려야 했다. 그 뒤로는 내가 먼저 그릇을 후다닥 정리하고 치워버린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지붕 아래에 살아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 나누며 함께한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한바탕 태풍이 휘몰아치고 간 듯 집이 고요하게 느껴진다. 거실은 평화를 되찾았다. 하지만 어쩐지 시원섭섭함을 느낀다. 이제 설거지하는 내 뒤로 착하다 칭찬 던져주는 이 없고 손등에 뽀뽀해 주는 이 없으니 말이다.
할머니들은 치매에 걸려 아이 같아지셨지만 자식과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기억이 희미해져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희미해지지 않나 보다. 만약 할머니들이 우리를 기억 속에서 잊어버릴지라도 계속 그들과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날마다 새로운 사랑을 속삭이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