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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Jun 18. 2023

비가 오는 날이면 할머니로부터 전화가 오는 이유

세 여자의 비 오는 날의 단상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초여름, 베란다를 통해 밖을 내다보던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이 빗소리가 너무 좋더라. 분위기 있지 않니?”


“그래?”


나는 속으로 그 말에 동의했다. 태풍을 제외하고서 나도 어릴 적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다가도 갑자기 멈춰 서서 빗속에 있는 걸 즐겼더랬다. 수첩하나 펜 하나 들고 시인이 된 것 마냥 시를 끄적이기도 했다. 물론 제대로 된 시를 써낸 적은 없다.


여름에 내리는 비는 차갑고 시원해서 열에 달은 몸을 식혀줬고, 빗소리에 파묻히는 고요한 순간에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여느 꼬맹이들이 그렇듯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거나 피해 다니는 놀이를 하며 즐기기도 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에 열광하던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된 지금은 솔직히 말해서 아주 좋지도 싫지도 않다.


비가 내리면 도로 위 지저분한 흙먼지 같은 것들이 물에 씻겨져내려가 시원한 것도 같다. 그래도 바짓가랑이가 축축하게 젖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 엄마에 그 딸인지 빗소리만큼은 또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의 수제비와 파전도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이라 하면 떠오르는 한 사람 있다. 바로 통영에 계시는 할머니다. 할머니와 나 사이 특별히 비에 대한 추억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할머니에게 있어 비 오는 날은 특별했다. 특별히 싫은 날씨 말이다.


거제도 시골 출신 아버지의 아버지는 배를 타는 사람으로, 그 시대 그 마을에서는 조업을 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도 잠깐 배를 탄 적이 있다고 하셨으니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으레 어부라 하면 떠오르는 소금기를 머금고 햇볕에 그을려 새카맣게 탄 피부, 깡마르지만 실전 근육으로 탄탄한 몸, 그런 모습이지 않으셨을까 하고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찌 됐든 조금 특별한 배를 타던 할아버지는 몇 개월을 바다 위에서 사투를 벌였고, 집으로 돌아와 쉬는 건 고작 며칠이었다고 한다. 그 짧은 며칠 동안은 하교하고 돌아온 자식들과 실컷 놀아주고는 맛있는 걸 만들어 먹이셨다.


가진 것 많지 않고 작은 집이었지만 그 시절이 즐거웠노라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쁜 소식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불편한 손님처럼 갑자기 들이닥쳤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고 아버지는 회상하셨다. 배는 돌아왔지만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같은 배에 탔던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바다에 빠져 실종됐다고 말했다. 당시 아버지와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집어삼킨 캄캄한 바다를, 망망대해 어딘가에 있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치매가 오기 전까지 비가 오는 날이면 꼭 아버지에게 전화해 물으셨다.


“여기는 비 온다. 거도 비 오나?”


특별한 목적 없이, 비가 오는지 여부만을 묻는 안부전화. 때로는 ‘이맘때쯤 돌아가셨다.’라고 덧붙이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에 대해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아버지에게 ‘너도 아버지가 떠오르지 않니?’라며 기억 속에나마 살아계신 할아버지를 추억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할머니에게 치매가 생긴 이후로는 날씨를 묻는 전화도 자연스럽게 끊겼다. 할머니는 이제 비가 와도 괜찮으신 걸까? 그랬다면 좋겠다. 그럼 장마가 시작될 때마다 반복되던 슬픔과 외로움도 더 이상 없을 테니 말이다. 이제야 할머니 안의 바다가 잠잠해진 것이다. 비가 오더라도 바다는 잠잠할 것이다.


비 오는 날, 더 이상 할머니의 전화는 오지 않지만 나는 종종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추억했듯 훗날의 우리도 비를 보며 할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을 추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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