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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Jul 06. 2023

모든 게 설명되는 ‘여름이었다.’

여름, 벌레, 구름

잊어버렸던 여름을 찾기라도 하듯 사강의 책을 뒤적였다. 오래되어 먼지가 앉은 책의 모서리를 휴지로 닦아낸다. 어디였지? 분명 어디서 봤는데. 여름이었다고 세실이 말했었는데. 있었다고 기억하는 걸 보니 가장 뒷부분에 나오지 않았을까? 무작정 뒷장부터 찾던 나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맨 앞장을 펼쳐 읽어 내렸다. 그렇게 몇 페이지를 넘기고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모래 폭포가 시간처럼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그건 한가로운 생각이라고, 한가로운 생각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고 느꼈다. 여름이었다.’


이건 세실의 여름이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 시간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만 같다. 뜨거워진 아스팔트만큼 사람들도 뜨거워지는 시기. 두려움과 설렘이 얽히고설킨다.

늘 그래왔듯 공허함을 느낄 새 없이 여름은 지나가버릴 것이다.

여름이 시작되었다.

- 책 속에 벌레가 기어들어왔다


평소보다도 이른 아침에 깼고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어떻게든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오후 일찍 노트북과 책 한 권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향하는 곳은 집에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카페로, 산책을 겸해 걷기 좋은 곳에 위치에 있다. 적당히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꿉꿉하던 것이 보송보송 말려진다. 진하게 내린 바닐라빈라테가 엔진이 되어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꼭지 분량을 쓰고 난 뒤 노트북을 도로 집어넣고서 이번에는 책을 꺼내 들었다. 밖에서는 비가 한창 쏟아지고 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플레이, 준비완료.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던 도중 흠칫 멈춰 섰다.


‘벌레?’


날파리가 많이 꼬이는 더운 날씨이기에 이해는 하지만, 눈을 의심하듯 가까이서 봤다가 다시 멀리서 봤다. 휴지로 슥- 닦아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손으로 문질렀다. 잉크였다. 정확히는 벌레모양 그대로 찍힌 것. 지금까지 책을 읽으며 진짜 벌레시체는 많이 봤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마냥 신기했다.


뒤늦게 깔깔 웃으며 그게 뭐라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지끈거리던 머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졌다.     

이름 모를 책 속의 벌레에게, 고맙다.

- 구름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시적인 충동이었다. 문득 아침의 폭염주의보 알림이 울렸던 게 떠올랐다. 장보고 돌아오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파란 도화지에 흰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절경이 펼쳐져있다. ‘안개 속의 방랑자’가 떠오르는 멋진 구름이다.


내 기분은 이리도 우울한데, 해맑은 하늘이 얄밉게 느껴진다. 그런데 녀석을 계속 보고 있으니 어쩐지 ‘그래, 뭐 어때?’싶다. 우울해도 뭐 어때. 얄미운 하늘은 잠시를 못 참고 우울을 멀리 쫓아내 버렸다.

알았어, 알았어. 나 이제 기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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