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 줄만 써주세요
책을 읽던 중 소중한 사람의 손글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차 싶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기도 하고 나도 남겨보았다만, 손글씨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나는 어머니에게 책과 볼펜을 들이밀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 한 두 줄만 써줘요.”
앞뒤 맥락도 없이 당당한 요구에 어머니는 이게 뭐냐며 웃으셨지만 흔쾌히 받아 들고 써주셨다. 그 순간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버지와 마주쳐 마침 잘 됐다며 아버지에게도 똑같이 책과 펜을 내밀며 말했다.
“정말 딱 한 두 줄이면 돼요!”
어머니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시고는 뭐라고 써야 좋으냐며 쑥스러워하셨다. 대충 써도 괜찮다는 나의 말에도 아버지는 어떻게 그러냐며 숙제라도 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의 빈 공간은 어느새 아버지의 필체로 가득 찼다. 글쓰기 좋아하는 딸내미 둬서 취재당해야 해 글도 써줘, 늘 고생이 많으신 우리 부모님. 그래도 글을 쓰는 동안 즐겁지 않으셨을까? 는 나의 바람이다.
아버지가 쓰신 글을 어머니가 쓱 보시더니 말했다.
“길게도 썼다.”
아마 본인보다 배로 길게 쓴 아버지에 민망하신 듯했다. 그렇지만 짧든 길든 내게는 똑같이 좋았다.
[엄마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딸. 보석 같은 예쁜 딸 보영 사랑한다~♡]
[우리들의 삶이 그날 그때 그 시간이지만 결국 삶을 돌아보면 나의 기억으로만 있을 뿐 그 외는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삶을 글로 표현하고 남긴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삶이라 생각한다. 강보영 대단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꿈을 이루어 나가길 바란다.]
부모님의 손글씨로 가득 찬 한 페이지에 책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이제는 단순히 책이 아닌 소중한 것이 된 것이다. 아버지가 써주신 글에 대해 멋지다고 말하자 '학교 다닐 적에 국어를 잘했었다'라며 깨알 같은 자랑을 덧붙이신다.
나란히 놓고 보니 유독 두 분의 글씨가 서로 닮아 보여 비슷하다고 말하니 아버지는 어머니가 더 악필이란다. 그런가? 여전히 내게는 어릴 때 느꼈던 것과 같이 멋있는 어른의 글씨다. 두 분에 비하면 내 필체는 한 없이 어리기만 하다. 글씨체 하나에도 세월이 묻어나나 보다. 언젠가 나도 두 분과 같은 글씨체로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날이 멀게 만 느껴진다. 삶에도 시행착오가 있듯, 글씨체를 다듬어 나가는데도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는 언제부터 이 글씨체였어?”
“어릴 때부터 그랬지. 엄마는 원래 글씨체가 예뻤어.”
“…….”
나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