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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가 나는 이유

이상한데서 FM이라니까..

by 하이바이

발레 발표회 날이었다. 음식을 싸 오지 말라는 원장님의 말에 아이가 도시락 싸가기를 거부한다.

아침도 먹기 싫다 도시락도 싫다. 그럼 하루 종일 뭘 먹냐고 도시락을 싸가라는 내게 원장님이 싸 오지 말랬다며 성을 낸다.


그래.. 그럼 과일만 싸가.. 하고 딸기를 몇 개 싸주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너무 많다고 조금만 싸달란다.

그럼 밥을 하루 종일 먹지 말란 말이야? 하니 점심시간을 따로 줄 테니 배고프면 나가서 먹으라고 했단다.

그렇구나.. 그럼 밥 먹을 시간에 엄마한테 전화해. 하고 핸드폰을 충천해 챙겨주며 애들이 안 나간다고 안 하지 말고 꼭 전화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두시가 지나도 전화가 안 온다.

걱정되는 마음에 찾아가니 리허설 중이란다.

아이가 아침부터 먹은 게 없어서요~~ 하니 실장님이 말한다. 안에 먹을걸 조금 준비해 놓았다고 과일이랑 초콜릿 같은 걸 먹었을 거라고.


그래서 전화가 없나...

그럼 저는 간다고 아이 보면 좀 일러주세요 전화도 안 받네요.. 하고 돌아서는데 발이 안 떨어진다.

결국 다시 카페로 들어가 혹시나 아이가 전화가 오려나 기다렸다. 안 오면 이대로 공연을 보러 가지 뭐. 하고.

달달한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으니 벌써 4시다.


그런데 띠링 문자가 온다. 배고파.. 헉.. 역시 아무것도 안 먹었구나.

배고파? 뭐 좀 사갈까? 샌드위치? 김밥? 연달아 문자를 보내니 응! 하고 답장이 온다.

이 녀석.. 점심시간에 전화하라니까 이 시간에 문자로.. 그래서 내가 다시 말했다 뭐 사가 샌드위치? 김밥? 아니면 간단히 삼각김밥? 하니 한참만에 삼각김밥! 하고 답장이 온다.


얼른 삼각김밥을 몇 개 사가지고 가니 아이가 좋아하며 받아 든다. 그런데 주위친구도 배가 고픈 눈치다. 너희들도 하나씩 사다 줄까? 하니 고개를 끄덕끄덕. 00 이는 얼른 먼저 먹어~ 하고 돌아서서 편의점에 갔다 오니 아이들이 또 없다. 다시 리허설이다...


삼각김밥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못 먹었구나.. 어째.. 배고프겠다..

삼각김밥 몇 개랑 초콜릿 두 개를 나눠먹으라고 아이물통옆에 놓아주고 돌아 나왔다. 아무도 없는데 나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좀 아니다 싶어서 기다리지 못하고 나왔다.


그런데 결국 삼각김밥은 못 먹었단다. 게다가 놓여있던 초콜릿은 내게 아니니 안 먹었단다.. 밥 먹을 시간 없으면 초콜릿이라도 먹으라고 문자까지 보내놨는데.. 못 봤단다. 물컵이랑 00이 짐옆에다 삼각김밥이랑 같이 놨는데 엄마가 사다 줬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그랬더니 자기가 안 가져와서 누구 거지? 했단다... 전화해서 물어볼 생각은? 했더니 못했단다.


삼각김밥은 왜 안 먹었어? 하니 주위에서 친구들이 이제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단다... 내가 배가 고픈데 먹어야지.. 그러고 나니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아졌다. 속이 쓰리다 못해 신물이 올라왔단다. 너무 힘이 들어서 정말 죽는 줄 알았단다.. 그 말에 화가 왈칵 난다.


문득 실장님이 학원에서 준비했다던 간식이 떠올랐다. 거기에 과일 같은 거 있었을 텐데 안 먹었어? 했더니 그건 누가 놓았는지 몰라서 못 먹었단다. 그런데 갑자기 언니들이 두 컵 씩 까먹었다고... 먹으라고 말을 안 해줘서 동생들은 아무도 못 먹고 언니들만 먹었단다. 그건.. 언니들이 잘못했네. 언니들도 배고파서 생존본능이 올라왔나 보다. 동생 들 거까지 다 먹은 거 보면.. 선생님들도 바쁜 건 알지만 그래도 애들 먹을 건 좀 챙겨줘야지.. 이쯤 되니 다음에 발표회 한다고 하면 그냥 여행 가고 빠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부터 엄마는 도시락 무조건 싸줄 거니까 군말 말고 가져가. 먹든 못 먹든 일단 가졌는가. 엄마가 삼단도시락 싸줄 거야. 가서 애들이랑 나눠먹어도 되고 남겨서 버려도 되니까 일단 가져가 알았어? 하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성을 낸 건 아니다. 그런데 아이가 인상을 쓰며 그런데 그 말을 왜 그렇게 말해? 한다.


아이고.. 이런 뉘앙스는 귀신같이 알아채면서 왜 자기 몸 챙기는 주변머리는 없는 걸까.

화가 난다 화가 나. 너무 화가 나!!!!!!!!!!!!


그런데 애들이 도시락을 하나씩 꺼내더라? 내가 가져간 딸기는 가자마자 배고파서 친구들이랑 나눠먹었거든. 그래서 나는 한쪽밖에 못 먹었거든? 근대 한참있다가 한 명씩 도시락 꺼내더니 다 혼자서만 먹었어. 안 나눠주고... 나도 배고팠는데..


아이의 말에 내 화가 폭발했다. 전화는 왜 안 했어? 점심시간에 엄마가 전화하라고 했잖아. 엄마 밖에서 계속 기다렸는데 왜 전화 안 했어~! 하니 엄마 그런데 왜 화를 내고 그래?! 한다.


아이고아이고 ~~~!!!! 화가 난다 화가 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초콜릿이라도 먹지 엄마가 삼각김밥 사 오면서 같이 사 왔다는 생각을 못했어??? 하니 초콜릿은 미안하단다. 정말 몰랐다고.. 풀이 죽어 이야기한다.


아이고~~~ 아이고~~~ 화가 난다 화가 나~!!!!!!!!!!! 왜 또 풀이 죽는 건데 그깟 초콜릿이 뭐라고 그것 때문에 화가 나겠니!!!! 네가 하루 종일 안 먹고 힘이 들었을걸 생각하니 속이 상한 거지!!!!!!!!


아이는 정말 죽을 맛이었나 보다. 나중에 사진 찍을걸 보는데 아이가 인상을 한껏 쓰고 언제 끝나나 하고 있다.

진짜 사진 찍을 때 너무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단다. 모든 사진에 다 똑같은 표정이다. 아저씨 아 고만 안 찍어요? 나 죽겠는데~~ 하는 표정. 화장을 해놓은 탓에 아이의 노여워하는 표정이 더욱 부각된다.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나둘 나올 테니 기다려달라는 안내에 따라 기다리는데 우리 아이만 안 나온다. 왜 안 나오지.. 하고 들어가 보니 돗자리에 철퍼덕 앉아있다. 나 죽겠네 하는 표정을 하고.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아이가 밥을 하루 종일 굶어서 힘든 줄은 모르고 무대공포증이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이런 건 처음 본다고.. 리허설까지는 괜찮았는데 본 무대에서 힘들어했다고... 아니 굶었으니까 그러죠. 버티다 버티다 죽겠으니까 그러죠.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무대공포증.

모르는 소리다. 아이를 키운 나에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문화센터에 갈 무렵부터 음악소리만 들리면 앞에 나가서 춤을 덩실덩실 추던 아이다. 선생님이 이거 해볼 사람 앞으로 나오세요 하면 당연하다는 듯 앞으로 걸어 나가던 아이다. 어린이 뮤지컬 중에 앞에 나와서 같이 해볼 사람~ 하면 손을 번쩍 들고 혼자 나가던 아이다. 광장에서 노래가 나오면 사람들이 다 쳐다봐도 가운데에 들어가 춤을 추던 아이인데.. 무대공포증이라니...


배고파서 그런 거예요. 아이가 뭘 아무것도 안 먹어서..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더래요..라고 말하려던 걸 넘기고 무대공포증이라고 생각은 안 드는데 그런 가능성도 있으니 한번 지켜볼게요. 했다. 아이가 차분한 성격이라 극 내향형에 아무래도 무대에 나가기 전 겁을 집어먹고 힘들어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나 보다. 그런데 우리 아이 검사결과는 내향형이 적절히 섞인 외향형 아이다. 외향성이 더 강하다. 나도 이외였는데 아무튼 그렇다.


그전 콩쿠르에서 멀미 때문에 나 못해 힘들어 못해했던 전적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도 확실하게 배가 고파서. 먹은 게 없어서 힘이 없어서였던 것을.. 그래서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던 것을..


그 후 두 번의 콩쿠르를 무사히 마치고 나서 아이는 무대공포를 극복하고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는 발레리나 지망생이 되어버렸다. 뭐.. 좋은 게 좋은 건가.. 아무튼 해피엔딩인 건가.


이번에는 또 선생님이 아이에게 운동을 숙제로 시켰는데 일주일에 최소 3번은 하자고 했다며 운동 많이 할 수 있게 챙겨달라는 말을 남기셨다.

그런데 아이는 이걸 일주일에 꼭 3번만 하라고 알아들었나 보다.

선생님이 운동 매일 하라고 숙제내주셨다는데 지금 할래~? 하니 아니 세 번만 해야 하는 건데? 한다.

세 번만 꼭 세 번만 하라셨어? 하니 응 그리고 찍어서 선생님한테 보내야 해. 한다.

00아 세 번만 안 해도 돼~ 시간 날 때 더 많이 해도 돼~ 매일 하면 당연히 좋지~ 하니

아니야 선생님이 꼭 세 번만 하라고 하셨어~!라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한다.

아이고... 두야..

왜 이런건 이렇게 곧이 곧대로 듣는걸까.... 발목이 약해서 자꾸 삐끗하니 발목힘을 기르라고 운동숙제를 내주셨는데 못해도 일주일에 세 번을 하라는 걸 이렇게 세 번만 해야 한다고 알아듣다니.

00아. 선생님이 엄마한테 00이 매일 운동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셨어. 일주일에 최소한 세 번은 해야 효과가 있어서 세 번은 꼭 하고 영상도 찍어서 검사 맡으라고 말씀하신 거야~. 하니 그제야 그런거야? 한다.

아이고.. 아이고.. 이상한 데서 FM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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