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얼굴에 던져버릴.
열마전 우연히 릴스에서 결혼 10년 차가 되면 생기는 일을 알려주는 사람을 보았다.
그녀는 해맑게 5년 차와 10년 차 부부의 대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5년 차쯤에는 나 오늘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하며 재미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면 남편은 나는 별로 재미없는데? 한단다. 그럼 아니.. 뭐 말을 그렇게 해.. 하면서 속상해한단다.
그런데 10년 차가 되면. 절대 내가 재미있었던 일에 대해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단다. 남편이 아닌 동네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서로 공감하고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다 집에 와서 기분이 좋은 채로 잠자리에 든단다. 그럼 옆에서 남편이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었어?라고 묻는단다. 그럼 응. 하고 잔다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절대 이야기해 주지 않고. 어쩌면 '그동안 나 당신의 무관심이 속상했어.' 하는 표현일지도 모르고 '그런데 이제 괜찮아 당신 없어도 나 말할 사람 많아~' 하는 작은 복수일지도 모르는 그 '응.'이라는 단답형 대답이 내 속을 뻥 뚫어 놓았다. 그리고 남편도 굳이 굳이 무슨 일인데?라고 묻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그래.. 당신이 그렇지 뭐. 하는 체념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이걸 5년 차가 아니고 1년 차부터 겪었고 그 서운함과 속삼함을 넘어선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몇 번이나 다신 이야기 안 해줘.라고 혼자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 내고야 말겠다는 듯 나는 몇 번이고 또 이야기하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이야기할 사람이 다 늦은 저녁에야 집에 들어오는 남편밖에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정말 단 한 번도 내 이야기에 무어라 말을 해주거나 답을 해준 적이 없었다. 못 들었나? 싶어 한번 더 이야기해도 묵묵부답이길래 한번 더 이야기했더니 짜증이 돌아왔다. 아.. 왜 자꾸 똑같은 말을 하고 그래. 그 한마디가 어찌나 아프던지. 나는 그에게 화는커녕 아.. 대답이 없길래 안 들리는 줄 알았지..라고 작게 되받아 쳤다. 그러니 내가 거기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해? 가 직선으로 날아와 꽂혔다. 처음에는 남편과 아이에게 똑같이 향하던 내 애정은 차츰차츰 남편의 거부반응에 튕겨져 나와 아이에게로 갔다.
내게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자신에게 흘러가던 크고 깊은 애정을 차츰차츰 건조한 흙더미로 막아버린 장본인이 본인인 것이다. 그런데도 남편은 내가 아이에게만 애정을 쏟는다고 가족의 균형을 들먹이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리고 꼭 그 뒤에는 이혼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나는 그의 이혼이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불평과 불만을 집어삼켜버렸다. 그건 해소되지 못하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는 참 편리하게도 부부사이와 가족의 평화를 챙겼다. 이혼이라는 말 한마디면 나는 그의 의견에 모두 동의해 버렸다. 그는 그러면서도 내가 단 한 번도 기쁘게 정말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라며 자신의 말에 동의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또 이혼을 이야기했다.
편하고 가볍게 내 입을 막은 만큼 몇 배나 무거운 감정들이 내 안에 쌓였다.
그에게 이혼은 마치 식후에 먹는 디저트 같았다. 집안꼴이 마음에 들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꼬투리를 잡아 싸움을 하고 나면 꼭 디저트로 이혼이라는 말이 나왔다. 주기적으로 싸움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이혼이라는 디저트를 들이밀었다.
내가 준비한 디저트 마음에 들어? 그런데 너 이거 못 먹는 거 아니야? 그가 내민 디저트에서 역한 시궁창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역한 디저트를 그에게서 잡아채 그의 얼굴에 제대로 던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내 기억에는 처음으로 정말로 정이 떨어진 일이 있었다.
남편이 내 이야기를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망각한 채로 그날도 퇴근한 남편에게 신나게 그날 재미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하. 하. 하 갑자기 남편의 웃음이 들려왔다. 아이를 보느라 계속 남편과 아이를 오가던 내 시야가 남편에게서 멈추었다. 당혹스러움. 그 웃음에 대한 내 반응은 그야말로 당혹스러움이었다. 그는 큰 웃음을 또박또박 큰소리로 말했다. 인위적으로라도 웃은 게 아니고 그저 하. 하. 하. 를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한 거다.
내 시선이 멈춘 남편의 얼굴에 지금껏 보지 못한 표정이 서려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내게 콩깍지가 씌어 보지 못했던 걸 수도 있겠다. 가소로움. 비아냥. 으스댐 같은 단어로 표현될법한 표정이었다. 어쨌든 그 웃음을 듣고 그의 표정을 보자 순식간에 내 표정이 굳어졌다. 진. 짜. 웃. 기. 다. 내 표정이 굳거나 말거나 그가 또 말을 이어한다.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내가 물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날 그 순간 나는 좀 많이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남편이 무어라 무어라 말을 하는데 대충 네 말 하나도 재미없고 나한테 왜 그런 말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그날은 속상함을 넘어선 무언가를 느낀 날이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실망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이혼한 후 누가 나에게 전남편과 한 공간에 있기 싫어진 날이 있다면 언제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바로 그날이 첫 번째 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몇 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조잘조잘 잘도 떠들던 나와 순식간에 내 표정이 굳었는데도 모른 채로 히죽히죽 잘도 떠들던 남편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때에도 나는 감히 그와의 이혼을 생각하진 못했다. 그저 내가 남편이 퇴근하면 기다렸다는 듯 뛰어나가 그를 붙잡고 그날 제일 재미있었던 일을 말해주는 그 일을 다신 하지 않으면 된다고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