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의 시작.
10년의 결혼생활이 끝났다.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고 50일부터 정해졌던 결론이었다. 그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숨 가쁘게 그를 붙잡고 있었다. 그가 실로 대단한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얼마든지 하찮게 여기고 떠나보낼 수 있는 인연이었다. 우리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면. 그가 내 아이의 아빠가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그도 알았을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이래도 무방하고 저래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면 살고 있었다.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무방한 삶. 한마디로 정의 내리면 그랬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겉보기에 나는 밝고 잘 웃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실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게 괴로웠다.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도 마음을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도.
얇은 내복 하나 걸치고 맨 무릎으로 아스팔트를 걸어가는 느낌. 남들은 신발을 신고 걸어가는데 나는 주저앉아 얇은 천으로 무릎을 가리고 기어가고 있다. 이곳만 지나면 어떻게든 될 거야. 괜찮아질 거야.
그러나 그나마 주어진 얇은 천은 닳아 없어져서 곧 맨살이 드러났다. 새 하얗던 내 맨 무릎은 아스팔트의 거침을 이기지 못하고 빨갛게 까져 피가 흘렀다. 나는 멈추었다.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그 무엇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침대에 두꺼운 커튼을 달았다. 햇볕이 싫었다. 이대로 어둠 속에 머물고 싶었다. 그냥 조금 쉬고 싶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힘들었다. 언니가 누나가 저 아이가 왜 저러는지 가족들은 세상 무해한 표정으로 다들 날 드라다 봤다. 어둠 속에 자리 잡고 보니 우리 가족도 밝아보였다. 히키코모리라도 되고 싶었던 나는 또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채 다시 세상으로 나갔다. 누군가 끈질기게 나에게 연락을 해왔고 나는 그 손을 잡고 충분히 쉬지 못한 채 다시 빛으로 던져졌다.
그때 내가 나에게 일어난 일을 가족에게 털어놓고 상의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세상에 두꺼운 옷을 입고 나설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니었을 것 같다.
나는 오래도록 괴로웠다. 어떤 날의 선택을 체념을 받아들임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괴로우면서도 괴로움이 계속되는 시간을 또 버텨냈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서. 삶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 오래도록 후회하고 나를 탓해왔지만 더 이상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 당시의 나를 이해해 주자. 나라도 나를 보듬어주자. 내가 나를 매몰차게 대하지 말자. 더 이상은.
다시 세상으로 나왔을 때 나는 그냥 척을 했다. 좋은 척. 맛있는 척. 괜찮은 척. 행복한 척. 단호한 척. 똑똑한 척.
누군가 내 무릎에 약을 발라준 것은 아니다. 아이아빠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하는 말들은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누구도 해주지 않는 말들을 했다. 그래 그랬다. 나는 그 말들이 좋았고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안전지대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단지 그런 말들을 해줄 어른이 필요했다. 비로소 어른을 만난 느낌이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저 바른 시선과 태도를 가진 어른.
그가 완벽한 사람은 아닐게 분명했음에도 그 당시의 나는 그처럼 현명한 이는 없다고 느꼈다.
목마른 자가 샘에서 떠나기 싫듯 나는 그의 옆에 머무는 게 좋았다. 비로소 안식을 찾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나는 나를 바로 세웠어야 했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작은 신념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그 신념으로 스스로 샘을 만들었어야 했다.
배웠다. 그간의 삶을 통해 이제야 하나를 배웠다.
샘.
나만의 샘을 만들자. 어떤 것에도 더러워지지 않을 깨끗하고 맑은 나만의 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