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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화가 난다.

인연은 참 질기다.

by 하이바이

10년의 결혼생활이 끝났다.

10년의 결혼생활을 치사한 재산분할과 몇 번의 법정참석 끝에 도장 찍기로 마무리했다.


이혼은 쉬웠다.

그러나 그 후의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아이를 위해서 나는 전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욕밖에 안 나오는 그 상황에서 그 사람에게 욕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힘든 상황이었다.


그는 그대로 완벽한 자유를 원했는데 주말에는 집에 와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삶이 답답했나 보다.

그는 그런 삶을 나에 의해 통제되는 삶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다른 가족들도 대부분 그렇게 주말을 보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느지막이 동네산책을 하거나 점심을 먹으러 근처 쇼핑몰에 가거나 계획을 세워서 캠핑을 가거나 한다.

저마다 삶의 모습은 다르지만 주말에는 대부분 가족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한다.


그는 그런 삶이 자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받는 억울한 일인 것처럼 억울해했다.

그리고 그 원흉이 나라고 생각했다. 원흉. 나는 그에게 자신의 삶을 옥죄는 원흉이었다.


내가 심각하게 잔소리를 해대는 아내였다면 조금 덜 억울하겠다.

주중에 일이 많다며 오늘은 못 들어간다고 할 때마다, 그 연락조차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마다 나는 별다른 말없이 알았다 해주었다. 오늘은 일이 많아서 못 들어오냐고 먼저 물어봐주었다.


10년을 나를 믿고 편히 일하고 나를 믿고 아이를 맡겼으면서도 자신의 삶이 더 자유롭지 못한 것이 나떄문이라 생각했다. 너무 많은 요구를 하는 것과 너무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은 결국 같은 거였다.

나는 어느 정도 그에게 요구를 하면서 살았어야 했다.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언제쯤 오냐는 말에 그런 걸 왜 자꾸 물어보냐고 짜증을 낼 때에는 어이가 없었다.

그냥 짜증을 내는 것도 아니었다. 맨날 물어보니 너무 답답하다며 못살겠다고 한다.

그럼 먼저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니 또 무시를 한다. 아니면 그냥 까먹은 거겠지. 그에게는 잊어버린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 그냥 까먹은 거다.


결국 매번 늦으니 매번 저녁은 먹고 들어오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도 굳이 일찍 들어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혼자 아이를 보느라 체력적으로 힘든 날도 많았다.

아이가 어린 시절에는 아빠의 공백을 메우려 더 많이 놀이터에 나가고 더 많이 아이와 몸으로 놀았다.

아이가 조금 크고 나니 아이가 이것저것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게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생활비를 모아서 목돈을 만들면 남편에게 주었는데 아이가 커서 학원을 다니고 여러 활동들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생활비를 꽉 채워서 썼다.


어떤 활동이든 공짜로 되는 것은 없었다.

체험이 곧 돈이었다.


진짜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여러 활동을 하는 게 남편은 불만이었다. 결혼 전에도 아이교육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걸 바보 같은 짓이라고 했으니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리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생활비를 절약해서 활동들을 해나갔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 당장 큰돈이 안 들어도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그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돈.

그는 돈에 민감했다.


자신이 나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지금까지 내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아이만 돌보았다는 것, 현재 당장 돈을 벌 직장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면서 모든 결정은 자신이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의견이 충돌할 때마다 나에게 비아냥 거리며 말했다.

"너 되게 똑똑하다 몰랐는데~ 그럼 다음 달부터 네가 다 알아서 해~ 돈도 네가 벌고~ 나는 아~무 것도 안 할 테니까."

그는 항상 자신의 사회성은 누가 봐도 완벽하다고 말하면서 나에게는 저런 말을 잘도 지껄였다.

그렇다. 그는 나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껄였다. 그것도 아주 가끔.


참 재미없게 살았다.

눈치 보고 마음 졸이며 힘겹게.


내 아이가 나처럼 살까 봐 무서워 그 사람을 내 인생에서 떨어뜨려 놓았다.

그래 내가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아이와 여러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고 삶을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계속해 나갈 거다.


오늘 좀 화가 났다.

나에게 아이일로라도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더니 아이에게는 언제든 만나자 엄마와 셋이서 웃으며 함께 만난 날을 기다릴게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미친놈.


그리고 아이 활동이 있는 날은 왜 아빠에게 연락하지 않았느냐며 데려다줄 수 있었는데..라고 했다고 한다.


진짜 미친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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