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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노화할 것인가?

by 초린

나에게는 올해 88세가 되는 할머니가 계시고 16살이 되는 반려견이 있다.

할머니와 반려견은 모두 나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연세, 나이에 비해 건강했던 지라 그다지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물론 가는데 순서 없고 갑작스러운 일은 누구도 피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작년부터 할머니 그리고 강아지 모두 아프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평소 안 하시던 병치레를 하셨다. 젊은 사람들에겐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을 아주 가벼운 장염이었다. 설사를 하긴 하셨지만 아주 적게 나왔기 때문에 가벼운 장염이라고 했던 것인데

그렇게 아프시고 나니 살이 쪽 빠져버리셨다.


그동안 항상 씩씩하셨던 할머니가

목소리에 힘이 없고 축 늘어져계셨다.

그래도 극복하셔 다시 건강을 되찾나 싶었는데

이번엔 감기, 그것도 독감이라 할 수 없는 가벼운 감기도 노인에겐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 반려견은 내가 20살 때 데려온 유기견이다.

엄마가 매주 등산에 데려가고, 몸에 좋은 것만 먹인 탓에

몰티즈인데도 골격과 근육이 대단한 강아지였다.

건강검진을 하면 항상 문제없음으로 나올 정도로 나이가 있으면 응당 생기는

심장병 하나도 없던 강아지였다.


문제는 작년 9월 중순부터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전 활달했던 모습을 잃어버렸다.

정말 갑작스러운 실명이었다. 나이가 있어 백내장이 오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었지만

보이던 눈이 갑자기 일주일 만에 안 보이게 되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눈이 안보이자 좋아하던 등산도 못하게 되면서 지금은 집안에서만 잘 움직이는 강아지가 되었고

노견이라고 할 수 없었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소중한 두 존재가 갑자기 노화함을 보면서

아무래도 언젠가는 다가올 그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받아들여야 한다면

나는 그들을 어떻게 잘 보내줄 것이고,

또 나는 어떻게 노화를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을 잘 보내주는 방법은 글쎄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밖엔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세상의 이치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의 연세, 나이를 생각하면 그다지 억울한 죽음은 아닐 것이니까.


그다음 나는 어떻게 노화할 것인가

최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변에 전하고 싶다.

내 가족이, 편이 있다는 건 전혀 외롭거나 두렵지 않음을 최근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들과 시간을 들여 잘 지내는 것, 내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내가 잘 노화하는 법, 살아가는 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죽음을 생각하기엔 어린 나이다.

30대 초반.. 아직 살 날이 더 더 많지만 인생이란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죽음을 멀리 피하기보단 삶과 죽음은 함께임을 깨달으면

인생은 더 달콤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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