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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을 사랑해

by 초린

나는 어릴 적부터 부지런히 목욕탕을 다녔다. 내 취향이었다기 보단 가족들이 가진 하나의 루틴이었겠지만 한 주를 끝맺음과 동시에 한 주를 시작하는 경계선에서 늘 주말마다 들리는 곳이었다. 어릴 적 나에게 목욕탕은 몸을 청결히 하기보단 다른 의미의 놀이터였다. 찬물에서 놀 수 있었던 게 가장 좋았고, 물장구를 치고 맛있는 바나나 우유를 먹는 게 큰 낙이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여탕에서 만난 같은 반 남자 사람 친구 때문에 한참을 숨어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이가 아마 7-8살이었을 텐데 그전까진 잘만 놀다가 남자애가 오는 게 어느 순간 이상하다 느껴진 나이었나 보다. 그랬던 탓에 왜 여탕에는 남자들이 오는데 남탕엔 여자가 따라가는 일이 없을까 하며 욕탕 입구에서 오늘은 아빠를 따라가겠다며 한참 씨름을 한 적도 있었다. 나 같은 여자애도 가야 공평하다 생각했는지 여탕에는 남자가 오는데 나도 갈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우겨댔지만, 끝끝내 '여자는 남탕에 오는 거 아니야'라는 속 시원한 이유를 듣지 못하고 여탕으로 가게 된 적도 있다.


얼굴에 오이 마사지를 하다 알레르기를 발견한 적도 있었고(먹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장난을 친다며 옷장 안에 들어갔다가 갇히는 바람에 울고 불고 눈물을 쏙 뺀 적도 있다. 매주 쌓인 주말 일정이 나에겐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목욕탕에서 만나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어쩜 세대가 달라져도 애들 노는 건 똑같을까 하며 미소를 짓게 된다.어릴 적 자주 가는 바람에 길이 들어 그런지 난 여전히 목욕탕을 사랑한다. 온천이면 더더욱 좋고!


목욕탕과 온천탕이 다른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제일 먼저 노천탕의 유무를 이야기하지만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아마 수질차이일 것이다. 온천이라 하믄 미끄덩거리는 정도만 알뿐 큰 차이는 잘 모르기에 대강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다.그렇다고 모든 온천이 다 노천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래된 곳은 노천탕이 없기도 하니까. 그런 탕을 만날 때면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온천을 사랑하는 이유는 말했다시피 노천탕이 제일 크다. 우선 따뜻한 물에 몸을 지지는걸 무척이나 사랑한다. 빈혈이 있어 오래 있다가는 큰 코가 다칠지언정,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이 온몸을 감쌀 때면 정말 사르르 하고 내가 녹아버리는 것 같다. 두 볼이 증명하듯 발그레 해짐과 동시에 그간 쌓인 독소, 예민함, 짜증, 화 어떤 부정적인 것들이 모두 함께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천마다 밀고 있는 이벤트탕을 즐기는 묘미도 가득하다. 재스민, 허브, 약탕 등 냄새는 다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색도 효능도 제각각인 탕에 들어갔다 나오면 면역력이 두 배 이상은 강해지는 기분까지 든다.


그럼에도 왜 노천탕이냐 하면, 그 뜨거운 탕이라도 바깥의 찬 공기와 마주하면 그야말로 천국이 다름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천탕에 앉아 있는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번뇌도 욕심도 사라지고 이대로도 좋다 느낀다.

그 유들함이 생각의 질도 다듬어주어 그동안 미루느라 못해낸 일들, 속상한 이들이 한순간에 다 해결되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거기에다 휴대폰을 지닐 수 없어 디지털 디톡스는 덤이다.복잡하기만 한 머릿속이 환해지며 자신감이 하늘을 뚫고 오지랖이 태평양만큼 넓어져 내가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를 축복까지 빌어보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아무래도 욕탕물에 유들 해지는 마법의 가루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매주 목욕을 가는 것은 어렵겠지만 힘들 때나 복잡할 땐 무조건 탕을 찾는 게 나만의 해소법이 되었다. 가볍게 쓰고자 했던 글이 이리도 길어지는 걸 보면 나는 정말 온천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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