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좁디좁은 세상

by 초린

세상 참 좁다는 소리는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세상에 여섯 다리만 건너면 온 세상 사람을 다 알 수 있다는 이야기는 조금 과장 같지만 아마 이 프레임에서 파생된 이야기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익히 들어 세상이 좁다는 건 알았지만 최근 들어 새삼스레 그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다.


작년 이맘쯤 중국에 사는 친한 언니를 보러 갔다. 중국 유학할 때 알게 된 언니인데 나는 1년 만에 유학생활을 끝낸 반면에 언니는 거기서 직장도 잡고 10년째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언니는 중국에 있는 한국회사에 다녔는데 경영상황이 안 좋아져 비교적 최근 다른 한국회사로 이직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첫 회사는 내가 한국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이 있어 그런지 기억에 잘 남아있으나, 두 번째 회사는 한국회사임에도 그다지 기억에 잘 남지 않았었다. 그렇게 오래간만에 북경에서 언니를 만나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중국 슈퍼마켓에 가서 구경을 하는데


언니: "이 제품이 내가 맡은 제품이야"

나: "아 이거하고 있어요?"(한국기업을 확인하고 한국본사를 다니는 친구가 생각남)

말할까 말까 하다, 친구도 해당 기업을 다니고 직무를 이야기했다.

언니는 내 말에 흠칫하더니 누구냐고 조심스레 물었고


"00 팀장님, 나랑 같이 일하는데?"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본사와 지사 간 언어도 다르고 타깃도 다르니 협업할 거라 생각을 못했다.

그러더니, 작년에는 중국에도 들러 시장조사도 같이 했다는 게 아닌가..

어제까지만 해도 자료요청 때문에 소통을 했다며 놀라곤 했다.


언니와 나는 서로 "와 세상 정말 좁긴 하다"를 연신 외쳤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어서 더 놀랬던 것 같다.

결론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던 날이었다.


언니와 이야기를 하다, 약 8년 전 유학 시절을 이야기하며 그때 같이 다닌 동생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00랑은 연락하냐는 언니의 질문에, 학기 끝나고 한 번도 개인적으로 연락해 본 적이 없고 심지어 연락처도 모른다 대답했다.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아무도 그녀의 근황을 알 수 없었다. 언니도 카톡도 없다며 마무리 지었는데, 그로부터 수개월 후 나는 결혼과 동시에 본가와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그 유학시절의 동생이 그것도 내가 사는 곳을 지나쳐 집을 가는 게 아닌가..(아직 인사를 건네지는 못했다) 정말 어이없이 소름이 끼쳤다. 이 세상 설마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 집을 가려면 골목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가는 동생을 보며 혼자 입이 떡 벌어졌다.

하하.. 언젠가 제대로 마주치게 되면 그때를 회상하며 밝게 인사를 건네리라 생각하며 세상은 정말 좁구나를 다시 한번 느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갔던 곳 자주 가기 vs 새로운 곳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