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이 늘었다고 느낀 순간

by 초린

받아먹기만 했던 어느 집 딸내미였던 나도 이제 나를 챙겨야 하는 어엿한 주부(?)가 되었다.

가정주부도 아니고 더더욱이 있는 집처럼 도우미가 있는 것도 아니라,

단지 결혼을 했으니 응당 해야 하는 업이 된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살림이 그다지 싫진 않다. 물론 나 혼자만 했다면 힘에 부쳤겠지만

같이 하는 것도 크고, 일상을 누리기 위한 과정이란 생각이 들면서

게임을 하듯 퀘스트에 임하는 나를 볼 수 있다.


나에게 퀘스트라 하면, 신속하고 정확하고 명쾌하게 해내는 것인데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해 동선을 따라 하나씩 제 시간 안에 해나가는 것은 초보 주부로서 아주 뿌듯할 수가 없다. 제 시간이라 하믄 너무 긴 시간동안 살림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간결하게!

아직 몇 십해나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깜깜하고 하고 나면 또 쌓이는 것이 집안일이라지만 아직까진 긍정적이다.


내 손은 점점 속도가 붙었다. 설거지도, 요리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끝낼 수 있는지 자주 하다 보니 손에 익는 것이 엄마 속도를 곧장 따라잡을 것만 같다.

살림이 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속도가 빨라져 여유시간을 확보했을 때, 굳이 물건을 사지 않고 재활용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 등 다양한 순간이 있지만

나에게 가장 체감되는 순간은 바로 남은 음식, 이제 막 한 음식, 음식 재료 상관없이 양에 맞는 그릇에 담았을 때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 갓한 음식을 넣기 위해 용기나 그릇을 꺼내오라 하셨다. 나는 항상 양보다 한참이나 더 들어갈법한 그릇을 찾아 내밀곤 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큰 그릇을 가져오냐며 코웃음을 치셨다.

엄마가 시킬 때나 내가 남은걸 용기에 넣어야 할 때면 나름 고민해서 가져다 놓은 그릇에도 한참 공간이 남는 걸 보고 좀 전에 가진 확신은 와장창 깨지고 만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꼭 맞는 용기에, 적어도 나만큼 공간이 남는 정도는 아닌 용기에 넣는 걸 보고

와! 하고 놀랐던 기억이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그런 감이 나에게도 조금씩 오는 모습을 보았다.

결혼과 동시에 땅! 하고 그 감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전부터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듯 ' 이 정도면 되겠는데?' 하고 알맞은 용기를 찾기 시작했었다. 10번 도전하면 4번은 맞는 그 정도의 승률이랄까.


며칠 전, 음식을 넣으려 용기를 찾다가 좀 작아 보이지만 알맞아 보이는 용기에 정말 딱 맞게 넣은 적이 있다.

아주 딱 들어맞아 그런지, 속으로 '나 살림 많이 늘었네!' 하며 혼자 감탄을 했었더랬다.

예전이었으면, 한참 큰 용기를 가지고 넣어봤다가 이렇게나 많이 남는다고? 하며 혀를 끌끌 찼겠지만 말이다.


나와 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남편은 내용물보다 훨씬 더 큰 용기에 넣기를 시전 한다. 마치 어린 자식을 보듯, 내 마음속엔 '언젠간 나처럼 딱 맞는 용기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조금 더 도전해 보려무나?' 하며 너무 크다고 콧방귀를 뀌었더랬다. (적당한 용기를 찾는 팁은 양보다 조금 작아보이는 용기를 고르는 것이다. 이 마저도 너무 작다면 넘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지만)

엄마가 그간 내게 보여준 놀라운 감각을 나도 슬슬 알아가고 있나 보다. 어쩐지 어른이 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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