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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 Dec 30. 2023

호주에서 영어 못하는 한국인이 살아남는 법

문자로 남겨주세요. 전화 말고요.

한인식당에서 기가 막힌 텃세를 경험하곤 아무리 돈이 궁해도 다시는 한인식당에 일자리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 내 영어실력은 외국인들과 일하기엔 부족했지만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에 그렇다고 시급도 낮을뿐더러 해외에서까지 모진 텃세를 경험하면서 돈을 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고 여기를 온 게 아니었거든.


그리하여 호주인이 운영하는 오지잡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악에 바쳐 부딪혀 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작성해 놓은 이력서(레쥬메)로 호주 일자리 사이트에 레쥬메를 뿌리기 시작했다. 유학원을 끼고 왔던지라 조언을 얻기도 했는데 조금 부풀려 쓰고 '척'하라고 하는 것이다. 워낙 진실한? 사람인지라 그런 '척'은 못하겠었지만 호주에서 살아남으려니 안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한국에서 카페경력 4년이나 있었고 충분히 비벼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레쥬메에 거짓말을 쓰진 않았다. 한국 카페에서 경력을 어필하면서 자신감 있는 '척'했다. 나는 카페경력이 이 정도라 잘할 수 있다든지. 수도 없이 뿌린 이력서 덕에 조금씩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문자로 미팅시간을 잡는 곳도 있었지만 가끔 전화를 오는 곳이면 모든 감각을 다 세워야 했다. 알아듣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가끔은 팁을 얻어 지금 전화받을 수 없으니 문자로 연락 달라고 남기기도 했다.)

몇몇 곳에서 연락이 왔다. 전화상으로 물어보는 것은 호주에 언제 왔냐, 어디 사냐, 학생이냐, 경험 있냐 같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쉬이 대답은 못했지만 알아는 들을 수 있었고 한 땀 한 땀 느린 영어를 남발하며 꾸역꾸역 인터뷰 시간을 잡아갔다.


이력서를 보고 연락 오는 곳도 드물었지만, 통화를 하는 곳이면 모조리 내 영어실력을 파악하곤 연락이 안 오는 곳이 대다수였다. (한 곳은 너 영어가 아직 일하기엔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낙담도 여러 차례였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몇 개월 만에 모은 돈을 다 쓰고 갈 수는 없었다. 호주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실패나 거절에 대한 깡이 두터워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의 전화나 문자 중 한 곳에서 인터뷰를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날짜까지 픽스되었는데 못 알아듣는 걸 최대한 감춰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임했다. 인터뷰에서 물어보는 질문은 뻔했지만 내 대답은 쉽지 않았다. 꾸역꾸역 어떻게든 나를 뽑아달라는 적극성을 보였다. 내가 인터뷰 본 곳은 피자를 팔고 커피를 파는 곳이었다.(호주에서 커피는 기본이라) 인터뷰가 끝나고 트라이얼을 해보자고 했다. 그래도 한 단계는 통과한 격이다.


며칠 뒤 그 피자집에서 트라이얼을 했다. 20대 초반의 호주인과 일을 하게 되었다. 어딘가 차가워 보이는 그녀에게 내가 일을 잘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한 게 기억난다.


그래봤자 들어오는 손님들이 커피와 피자 외에 어려운 음료를 말하면 나는 그대로 얼음이 되었고 절로 그 호주인을 쳐다보게 됐다. 그녀는 아무래도 못 알아듣는 내가 답답한지 답답한 표정을 연신 지었댔지만 한인식당에서 당한 수모보단 납득이 되는 정도였다.


약 두 시간의 트라이얼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손님과 대화를 하며 여유로운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가뜩이나 잘 못 알아듣는데 거기다 농담까지 섞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카페경력이 있어 커피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간 했던 알바짬밥이 통해 눈치껏 보조를 도맡았다. 그리하여 합격목걸이를 받았다. 그렇게 나도 한국인이 아니라 힙한 외국인들과 일할 수 있게 된것이다.


얼마 안 가 이 노력들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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