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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 Jan 06. 2024

영알못의 호주 생존

영어실력에 대한 참상

나도 드디어 한인잡을 벗어나 오지잡(호주인이 운영)을 얻어냈다. 호주에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들은 한인잡을 하고 있어 그런지 나를 연신 부러워하며 조금 오버해서 영웅처럼 대해줬다. 나도 이제 열심히 일하면 차곡차곡 돈을 모을 수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건 내 큰 착각에 불과했다.


내 일은 피자집에서 피자를 판매하는 일이었다. 피자가 구워져 나오면 6조각으로 잘라 손님이 잘 보이게 디피해놓고 오는 손님을 받으면 되었다. 대부분 포장 손님들이 많아서 손님이 오면 Hi, How are you?  피자를 가리키며 이거 몇 조각 줘하면 나는 Have here? or take away? 를 연신 내뱉으면 됐었다. 현금이든 카드든 받아내면 될 일인데 딱 여기까지는 로봇처럼 일을 해냈었다.


그런데, 손님이 조금 질문이 생기거나 모르는 음료를 시키거나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호주인을 만나기라도 하면 나는 AI처럼 미소만 혹은 다른 직원만 찾게 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영어에 능통했다. 현지인(호주인)부터 미국인, 브라질인, 혹은 호주계 동양인 등 대부분이 모국어가 영어에다 비영어권 친구들도 어찌나 영어를 잘하던지 나는 점점 '편한 일'만 골라하는 애가 되어버렸다.


오지잡은 보통 스케줄 근무로 이루어진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프트(일)가 나오면 일하는 방식인데, 첫째 주와 둘째 주는 시프트가 꽤 많아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많아진 시프트만큼 나의 영어실력이 뽀록(?)이 나면서 나는 점점 직원들과 소통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손님들과 소통은 다른 직원들이 도와주면 됐지만 현장에서 직원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일하는데 굉장히 큰 불편함이 되었을 것이다.

한 번은 Lid를 전달해 달라고 했다. 듣자마자 어디서 자주 들었는데 전혀 매칭이 되지 않았고, 한참을 헤매다 아.. 뚜껑..! 이미 그 직원은 다른 직원과 아이컨텍을 하며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또 한 번은 아직까지 이불킥인데 첫날 한 미국인 친구가 How is it so far?이라고 물었다. 지금까지 일이 어떻냐는 질문에 나는 바보같이 So far? -> far? > 멀어? 집이 얼마나 머냐는 걸 묻는 건가? 하고 Not that far. 을 외쳤다. 그때 그 미국인 친구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영못알 사건들이 모여 내 시프트는 거의 일주일에 하루, 그것도 몇 시간에 불과한 시간을 받았고 절대 이 시프트로는 호주살이를 지속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어선 안될 것 같아 다시 이력서를 돌리며 여러 인터뷰를 잡아댔다. 신기하게 한번 해봤다고 이후에 인터뷰를 보고 트라이얼까지 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 카페일을 찾아 나섰다. 아무래도 그때 당시엔 한국에서 제일 오래 일한 분야기도 했고, 호주 하면 무엇보다 커피라길래 나도 그 영광의 자리에 끼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면접은 이제 대충 눈치로 말할 수 있겠는데 트라이얼을 하다 조금만 대화가 깊어지면 어김없이 난 입을 꾹 닫거나 어? 어?를 외쳐댔다.


한 카페에서는 너는 지금 영어공부를 더 해야 된다고 직설적으로 듣기도 했고, 간신히 일까지 시작하게 된 곳에서는 이틀 만에 잘린 일도 있었다. 억울하다기보다 앞길이 착잡했다. 돈을 모으는 건 둘째치고 당장 집세 낼 돈, 밥 먹을 돈이 궁했기 때문이다. 영어가 하루아침에 늘어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한국을 갈 수도 없다. 비행기값이 없다. 어떻게 서든 할 일을 찾아나서야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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