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린 Jan 16. 2024

예정에 없었던 동양인의 동양인 차별

같은 인종이 인종차별을 할 때

호주워홀을 가기 전부터 가장 많이 듣고 뜨거웠던 화제는 바로 인종차별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마다 다르다곤 하지만 영어 못하는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물론 내가 언어가 안 통해도 센스있고 유머스러우며 극 E의 성향으로 주변을 활기차게 만들 수 있다면 예외지만 나 같은 I성향이 강한 영알못의 경우라면? 댓츠 노노.불가능이다. 호주살이에 대한 열망 때문인지 인종차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뿐 그것이 나를 막지는 못했다. 그런대로 살아남겠지, 아직 일어난 일에 겁부터 먹지 말자라며 토닥였을 수도 있겠다.


호주로 떠나고 초반 몇 개월동안에는 영어가 잘 트이지 않았어서 그런지 인종차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호주에서 뭘 해 먹고살아야 하는지가 우선이었던 것 같다. 몇 개월을 방황하다 드디어 호주인이 운영하는 피자집에서 혈기왕성한 다국적 친구들과 같이 일할 기회가 생겼다. 뼛속부터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나도 그 사이에 멋지게 영어를 하며 일하면서 어울리는 모습을 잠시나마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우선 말도 잘 못하는 동양인이 일하겠다고 들어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동양인이라서가 아니라 영어권 나라로 돈 벌겠다고 온 사람이 영어를 못하고, 그게 동양인인 게 문제인 것 같았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바쁜 상황에서 영어를 못 알아듣는 사람을 위해 마냥 친절하게 대할 수 없는 건 이해한다. 


나도 어쩔 도리가 없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일했다. 언어가 어디 하루아침에 늘으랴, 피자집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어떤 메뉴가 있으며 어떤 걸 원하는지 살펴가며 큰 실수 없이 말 그대로 존나 버텨가고 있었다. 직원들 사이에서 농담하나 못 던지고 같이 웃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나 짠한지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토닥여주고 싶다.

피자집에는 한국인(=나, 여기서 알게 된 다른 한국인)을 비롯해서 미국인, 브라질인, 네팔인, 동양계 호주인등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이 있었다. 물론 예외 없이 다들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잘했다. 영알못이었던지라 조금만 문장이 길어져도 그렇게 느낄 수는 있었지만 다들 호주에 적어도 3년은 살았던 친구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랬다. 눈치는 빨랐어서 영어는 못해도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는 느꼈으리라. 


문제는 동양계 호주인이었다. 동양계 호주인이라면 호주에서 태어나 자라며 호주인의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백그라운드의 문화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게다가 그 여자애는 10대였다. 이효리의 배드걸 눈썹이 눈에 띄었고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아마 파트타임으로 잠깐잠깐 오는 것 같았다.


영어를 못하긴 했어도 손님 대응, 커피 만들기 외 대부분의 것들은 할 줄 알았다. 손님과 스몰토크는 불가했지만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아는 정도였다. 수월하진 않아도 일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스몰토크보단 정직하게 돈받고 물건을 건네주기만 하면 될 일 아니겠는가?) 그래도 직원들이랑 점점 소통이 가능해졌고 항상 바에 나와서 일을 돕곤 했다. 그런데 그 여자애가 매장에 오기만 하면 나를 창고로 바로 보내버렸다. 창고는 2층에 있었는데 넓은 그곳에 들락날락 몇 번을 한지 모르겠다. 


상대가 몇 번 들락날락했으면 본인이 한 번쯤은 가는 게 도리이지만 커피 만드는 걸 좋아했던 그녀는 커피주문만 꽉 잡고 있었다. 커피 주문만 오면 피자를 팔다가도 '내가 할게'하면서 달려오곤 했다. 그런데 이 짓을 꼭 내가 있을 때만 했다. 아, 그리고 다른 한국인이 있을 때도. 한국인 친구는 이 피자집에서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말이 통하니 어찌나 반갑고 행복한지 같이 일한 시간은 짧지만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낸다.


뭔가 계속되는 께름칙함에 나는 한국인 친구에게 그 여자애 이야기를 했다. 그 한국인 친구는 영어를 곧잘 했다. 직원들이랑도 서슴없이 친하게 지내는 정도의 영어실력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한국인 친구는 bitch라며 연신 욕을 해댔다.


나도 느끼고 친구도 느꼈던 건 그 여자애는 서양인에겐 한없이 친절했다.눈웃음을 보는데 저런 표정도 있었나 싶었으니. 우리에게 대하는 태도와 사뭇, 아니 많이 달랐다. 이런 동양계 외국인을 싸잡아 보기엔 비약이 많지만, 듣자 하니 이 부류(백그라운드는 동양이지만 서양권에서 자란 사람들)가 자라면서 생긴게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많이 받아온다고 했다. 아마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한국인이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되려 인종에 대한 자격지심이 생기고 영어가 어눌한 동양인을 되려 차별한다는 이야기다. 그 여자애도 그런 심보였을까? 사실 우리도 같은 동양인이라지만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은근~하게 아니 대놓고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 나도 호주에 오기 전에 알게 모르게 나라에 대해, 인종에 대해 차별하고 있진 않았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피부색이 어쨌건 인종이 어쨌건 차별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전 05화 영알못의 호주 생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