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은 모두 중국인이 아니라고요
호주 살이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비록 나는 멋들어진 외관의 아파트와는 다르게 닭장 셰어를 하고 있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말 그대로 하루살이였어도 조금만 나가면 널찍한 공원이 여기저기에 있고 저렴하고 맛있는 커피, 저렴하고 고급진 와인들이 있으며 다양한 사정을 가지고 온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떠는 게 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집마다 빌트인 되어있는 오븐은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음식들을 죄다 시도해 볼 수 있었고 베이킹까지 할 수 있었다. 도전하는 족족 다 망해버렸지만 호주 워홀 온 것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한 번씩 오는 현타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물론 이런 것 가지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거나, 우울하다거 나는 아니지만 한계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영어를 써야 페이가 높아진다는 걸 알면서 매일같이 단 10분이라도 영어를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건 어려울 일이다. 그래도 조금씩 길어지는 영어문장이 꽤 뿌듯했다.
현타는 대게 이런 경우에 왔다. 호주에 있는 모든 동양인이 중국인으로 비칠 때, 그래서 나도 중국인이 되어야 했을 때 말이다. 사실 내가 중국인으로 보이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별하는 것은 어려울뿐더러, 중국에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인으로 봐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조상이 있는 것인지 내가 몰골을 잘 꾸미지 않은 탓인지 한국인도 나를 다른 나라사람이라고 인식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그런 대우가 탐탁지 않았나 보다. (지금은 완전히 내려놓았다. 어떤 국적의 사람으로 봐도 상관없고, 무턱대고 국적을 추측하는 것dl 무식하다는 걸 배웠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면 속으로 그러려 니가 되어버린다.) 한 번은 멜버른 피자집에서 일할 때였다. 일하면서 다양한 인종이 찾곤 하는데, 중국인들은 내가 한국인인 줄도 모르고 마구 중국어를 쓰곤 했다. 참 애석하게도 알아듣곤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고 말하면 어라 중국어를 할 줄이네 하곤 더 하는 것이다. 그 이후부턴 중국어를 안 썼지만. 이런 건 기본이고 서양인들이 나를 중국인으로 보면 나는 한국인이야라며 꼭 국적을 고쳐주곤 했다.
그런 일이 잦아서 인지 한 번은 사달이 났다. 내가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된 것이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피자를 팔고 있었는데, 피자 한 조각은 3.5불이라 동전을 내는 손님들이 많았다. 한 손님은 동전지갑을 뒤적거리며 '아 중국동전이 많네요. 흫'라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단지 중국동전이 많다고 했을 뿐인데 나는 거기다 대고 '저 중국인 아닌데요'를 외쳤다.
그 손님은 오해라도 했을 까봐 '아 아니요. 제가 저번에 중국을 다녀왔더니 중국동전이 많아서 골라야 해서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는 그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구나. 를 깨닫는 동시에 이건 무슨 이상한 자격지심인가.. 중국만 나오면 방어태세를 하려고 하다니.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중국을 좋아한다. 정치적인 거 빼면 중국은 재밌고 흥미로운 나라다. 중국인친구들도 많고 음식도, 문화도 좋아하는 한국인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묻지도 않고 나라를 추측해 버리는 건 기분 나쁜 일이다. 니하오라고 하는 인사도 참 많이 들었다. 중국 말고도 들었던 국적은 일본, 대만, 아랍..?
나는.. 누가 뭐래도 한국인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