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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y 01. 2023

38개월선생님

네네선생님!

2015. 04.01


38개월령 아기  

어린이집 별반 아니고 달반 아니고 해반인 아기는 밤마다 자기 전 "해반을 부르면!!" "네네 선생님" 놀이가 통과의례다. 이불 위 베개 2개를 포개어 만들어 놓은 자리가 선생님의 자리다. 그 자리에 아기가 서서 수업을 한다. 눈치 없는 학생이 곤란한 질문을 해서 말문이 막히면 자리를 바꾸자는 신호를 준다. 그때 학생은 재빨리 선생님의 자리로 옮겨 자연스럽게 다음 수업을 진행시켜야 한다.


교탁 앞자리에는 큰 엘사, 작은 엘사, 안나, 울라프의 겨울왕국반.  룰루, 예쁘니, 레테, 하나, 호비, 미키, 미니, 카카의 혼합반.  신데렐라공주님, 백설공주님, 오로라공주님, 재스민공주님, 인어공주님, 티아라공주님, 메리다공주님의 디즈니 일곱 공주반. 꼬마타잔, 고릴라, 곰, 표범. 등 정글반의 수많은 학생이 있다.  


학생들은 밤에 등원하여 공부한 뒤 김 선생님과 같이 자고 그다음 날 하원하는 시스템이다. 등원은 김 선생님께서 몇 번에 걸쳐 수고하시고 하원은 대부분 할모니선생님의 몫이다. 요즘 학교들이 인원이 줄어 폐교도 잇따르고 하건만 김 선생님의 학교는 미국 계시는 선생님의 큰아빠, 큰엄마께서 월트디즈니와 친분이 두터우셔서 계속 지원을 해주신다. 배송책임을 지신 친할머니께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터라 인원이 계속 증가 중이다.


제대로 못 서있는 학생들은 이불을 의지해 비스듬하게 누워있게도 해주시는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그 옆으로 고정멤버 할모니와 그날그날의  상황 따라 바뀌는 학생인 이모 혹은 엄마 따위가 본인의 출석체크 후 수많은 미니어처, 피규어 학생들의 팔을 하나하나 들어주면서 "네네 선생님"을 외쳐야 한다.


하지만 거의 매일 매번 그 역할 담당은 할모니혼자다.

"여여 부운 오늘은 무어(무슨) 수업을 할까요?" "아 생각났다"  호다닥 뛰쳐나간다.  손에 자연관찰 '감자책'을 들고 등장하신다. "여여부운 오늘은 감자에 대해 수업을 @#$%%^^&&**~~" 잘 못 알아듣는 할모니 학생 "예? 예? 뭐라고요??" 선생님이 얼굴이 살짝 흔들리며 학생의 자리로 빠르게 이동하신다. 할모니학생은 재빨리 뜻을 간파하여 선생님 위치로 옮긴다.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고 빨리 자고(재우고) 재우고 싶었던 할모니학생은 불 끄고 조용히 누워 별을 보며 잠드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천정에 쏘는 별 빔을 구입했다. 결국..  불 꺼진 방 안에서 별 빔을 켜고 흥분한 선생님이 새벽 2시까지 뛰어다니신다는 후문이다.


어제는 단축번호 1번 엄마에게 전화를 하더니 "나는 리나야, 너를 사랑해" 말한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책을 한동안 잠들기 전 읽어주었다. 책 머리말의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기(김리나) 에게' 라고 아기이름을 적어놓도록 된 괄호 부분을 아빠글씨로 채우는데 딱 삼일이 걸렸다. 아기에게 잠자리에서 읽어줄 때마다 물어본다. "누가 적어줬어요?" "아빠가요" 아빠 보고 있나!!! 


방사능에, 미세먼지에, 라돈가스, gmo, 항생제, 캠트레일 온천지가 상술에 돌아가고 온 세상이 이권에 뒤집혀도 꽃은 피고 아기는 자란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는 광고카피가 두려웠다. 그냥 흘러서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내 아이의 아이를 안으면서 이 시간들이 쌓여가는 게 고맙다. 아기의 눈빛 한번, 아기의 손짓 한번, 아기의 말 한마디가 모여 미래를 희망한다. 그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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