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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24. 2022

할머니, 산타할아버지 선물 대신 받아줄 수 있어요?

-우리 집 크리스마스트리의 역사-

"할머니 산타할아버지한테서 크리스마스 선물 대신 받아줄 수 있어요?" 아이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본다.  오늘 아침 이모 가족이 크리스마스이브를 안면도의 리조트에서 보낸다고 아이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이모부와 이모, 세 살 동생을 유난히 사랑하는 초등사학년 아이는 환호를 질렀다.  문제가 생겼다. 부모와 할머니가 반대를 한 것이다. "우리도 너와 함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야지."  벌써 눈 쌓인 안면도리조트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눈썰매도 타고 있던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직장동료 문상을 가는 아빠와 오늘도 출근한 엄마가 몇 시에 오는지에 따라 결정을 하기로 했다.  아빠는 2시 귀가 예정이고 엄마는 8시 이후 퇴근이라고 한다. 아이가 타협안을 제시한다. "진짜 크리스마스는 내일이니까 내일은 집에서 케이크도 자르고 파티하면 어떨까? 간신히 허락이 떨어졌는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내가 없는데 어떡하지
할머니 나 대신 산타할아버지 선물 받아줄 수 있어요?

 "그거슨 안되지 않을까? 산타할아버지가 대리수령을 좋아하실까?" 할머니의 대답에 상심한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를 울릴 수는 없어서 자신은 없지만 알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안 자고 기다리다가 할아버지께 "아이가 사정이 생겨서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저한테 대신 주시면 꼭 전해드릴게요"라고 말하기로 했다. 듣기로는 할아버지가 핀란드 국적이라는데 소통을 어떤 언어로 해야 할지, 심란한 크리스마스이브다.





 "할머니 나도 내키만큼 큰 트리 만들고 싶어요. " 외손녀가 말했다.  "여태 작은 트리만 했잖아 친구들 집처럼 큰 트리 하고 싶어."  아이 말이 맞다.  아이가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우리 집에는 그림으로 그린 트리나 작은 트리만 있었다. 찬란하고 멋진  큰 크리스마스트리는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에 가서 구경해 왔다.

-아이가 태어나던 해 크리스마스트리-


두꺼운 전지에  검은색 매직펜으로 나무 모양을  그리고  금색 은색 색종이를 동그랗게 오려 붙여 반짝거리는 전구를 달고 빨간색 종이로 별을 만들어 그 속에 아기 사진을 넣었다. 트리 꼭대기 정중앙에 예쁘게 별을 만들어 붙이는 것이  힘이 들었다. 1월생인 아기는 12월이 되자 연필도 곧잘 쥐어, 트리를 올려놓은 러그에 낙서도 해놓았다. 그날 밤 산타할아버지는 아기의 과자와  장난감을 선물하셨다. 다음 해 크리스마스도 역시 그림 트리였다.  아주 작고 디자인이 예쁜 트리 모형을  산 해도  있었고,  전선으로 거실을 휘감아 불빛 속에서 춤추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낸 해도 있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트리-

작년에는 그리는 것도 생략하고 전선만 트리 모양으로 둘러서 여러 모양의 색종이를 오려 붙이고 불을 켰다.  올해는  아이의 바람대로 큰 트리를 만들기로 했다.  후기를 다 믿지는 못하지만 막상 안 믿을 근거도 없으니 꼼꼼히 살펴서 그중 가성비 좋다고 낙점된 트리를 구입했다. 나무를 조립하고 나무줄기를 꼼꼼하게  펼치고  여러 종류의 전선을 두르고 각종 오너먼트를 달았다. 장식을 앞면에 집중적으로 요령 있게 다는 것이 관건이다.  아이가 까치발을 하고 트리의 장식 위치를 요리조리 바꾸어가며 꾸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 판단과 결정은 네가 해야지" 언제나 아이에게 해주는 말이다.  결정권자는 할머니가 걸어둔 산타모자의 위치를 재빨리 옮겨 걸더니 트리 완성을 선포한다. 아이가 해놓은 것에 다시 손대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밤중에 슬며시 나가보면 아이의 키만 한 트리가 불 꺼진 거실에서 혼자 반짝이는 모습이 여간 어여쁜 게 아니다.




작년까지 산타할아버지는, 그림트리나 탁자 위 작은 트리 앞에 아이의 선물과 함께, 선물주머니를 둘러맨 뒷모습이나 옆모습만, 할머니의 폰에 사진으로 남기고 사라지셨는데.  


올해는 대면해야 하나.












      

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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