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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r 28. 2023

오늘은 드림렌즈

하루만,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

할머니! 할머니이!  시작이다. 오늘하루는 또 몇 번을 부를지. 어젯밤은 기어이 같이 잔다고 해서 아이침대에서 잤다.  잠든 아이를 안아주고 주방으로 나왔다. 작두콩차를 끓여, 냉장고에 넣어둔 작두콩 물과 섞는다. 따뜻한 물과 사과는 아침의 루틴이다. 어젯밤 아이가 주문한 아침밥은 피자만두다. 팬에 만두를 올리는데 잠이 깬 아이가 부르는 소리다.


렌즈가 안 빠진단다. 드림렌즈 낀 지 올해 삼 년째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혹스럽다. 인공눈물을 넣어 눈꺼풀을 부드럽게 마사지한 후 다시 시도해도 뽁 소리만 나고 튕겨져 나온다. 몇 번을 해도 꼭 같다. 아이는 '학교 어쩌냐'라고 걱정한다. 학교보다 아이눈이 아플까 걱정이다. 눈이 빨개졌다. 아이 눈을 들여다보던 딸이 "렌즈가 없는 것 같아" 한다. "아니 있다고, 꼭 끼어져 있잖아." 딸이 해도 안된다.


'드림렌즈가 안 빠져'로 검색을 하니 여러 글이 있다. 크게 묘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공눈물을 넣고 오른쪽, 왼쪽, 위, 아래로 눈알을 돌려서 렌즈와 눈동자 사이에 공간을 주어 빼내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안된다. 큰일이다.  제일 가까운 안과가 9시에 오픈이다. 출근준비하는 딸이 담임선생님께 문자 넣기로 하고 아이 책가방을 챙겨 안과로 갔다.


접수하면서 렌즈가 안 빠져서 왔다고 하니까  간호사선생님이 "아 그런 거면 진찰 필요 없이 제가 빼드릴게요" 한다. 아이를 앉히고 눈을 들여다보더니 "렌즈가 없어요."  이게 다행인 건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의사 선생님께 진찰을 받았다. 확실히 눈에 렌즈는 없다. 그렇지, 렌즈가 돌아가 있으면 눈이 엄청 아플 텐데 아이눈은 멀쩡하다.


 "학교까지 같이 가주면 안 돼?" "그래 가자" 걸어가면서 어젯밤을 복기한다. "렌즈 끼고 뭐 했지? 춤췄나?" "아니 렌즈 끼고 누워서 조잘조잘하다가 잤지." 맞다. 어제 렌즈 끼고 특별히 움직인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끼고 바로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 책상에 앉아서 꼈으니까, 책상주위. 혹시 밑에 떨어져 의자발에 밟히지만 않았다면 회생 가능성이 있다. 침대에 누운 후  빠졌다면 몸무게에 짓눌려 찌그러질 수가 있는데 어제는 나랑 같이 자느라 바른 자세를 유지했다. 그나마 다행인가.  등교시간이 지나서 가까운 후문은 닫히고 빙 돌아가는 정문으로 갔다.  학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집으로 오는 걸음이 급해진다.


난시가 심한 아이는 드림렌즈도 비싸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 못 찾거나, 찾더라도 훼손되어 있으면 한쪽만 하면 50만 원인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바짝 엎드려 책상밑과 주변을 살폈다. 없다. 이번엔 책상 위 스탠드를 켜고  꼼꼼하게 훑는다.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침대 위. 여기서 못 찾으면 이제 찾을 확률이 거의 없다.


침대 매트와 프레임 네 귀퉁이 작은 구멍 사이에 뭐가 있다. 간신히 손을 비집고 넣어 꺼낸다. 머리 고무줄이다. 며칠 전부터 찾던 지압봉도 구멍마다 하나씩 끼워져 있다. 딸들이 초등학생일때 수지침을 배웠다. 침은 질색하니, 아이들 잘 때 양손에 볼펜침으로 침을 놓아주었다. 그게 키로가든, 건강해지든, 뭐든 되었겠지.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수지침 생각이  났다.


 리나는 성장기에 접어들었고 리안이는 아직은 아기지만, 나쁠건 없다 싶었다. 수지침에서 나온 지압봉을 사서 쥐고 자게 했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 잠시라도 쥐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며칠 전부터 안 보여 찾고 있었는데 침대 양쪽모서리 빈틈에 똑바로 잘 끼워져 있었다. 봤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더니. 이불을 침대 위에서 조심스럽게 털어본다. 렌즈는 안 보인다. 리나 베개를 살그머니 뒤집어본다. 없다. 내 베개 위쪽에 뭔가 보인다. 렌즈다.  멀쩡하다.  백만 원, 아니 오십만 원짜리 렌즈를 찾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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