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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r 30. 2023

가무에 능한 아이로 키웁니다.

춤추며 걷는 아이입니다.

격대육아를 하는 덕분에 딸 또래 친구가 많다. 젊은 친구 아이들 걱정을 나누다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 그래도 큰 틀에서 보면 생각하는 대로 아이가 가고 있지요?" 순간 큰 깨우침이 왔다. "네 맞아요. 진짜예요. 너무 잘 자라고 있어요"  정말이다. 우리의 걱정보다 아이는 잘 성장하는 중이다.


돌이 지나고 아기가 걷기 시작했다. 그해는 유난히 휴대폰 가게가 많이 생겼다. 자고 나면 하나씩 생기는 것 같았다. 입구에 풍선아치를 세우고 내레이터 모델이 마이크를 들고 율동을 하면서 오픈가게임을 알렸다. 기다란 공기인형이 팔을 펄럭이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길 위에  댄스음악이 울려 퍼졌다.  아기가 음악을 알고 춤을 즐기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는 바람생겨났다.


행동주의 심리학자 왓슨이 자신 있게 말했다. "내게 12명의 아기를 준다면 아이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부모의 환경과 상관없이 의사, 변호사, 예술가는 물론 거지나 도둑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했다.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한 인간의 생애디자인이 학습으로 가능하다는 겁나 멋지고 대단히 무서운 행동주의 이론이었다. 댄스곡이 나오는 휴대폰 가게 앞에서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눈을 질끈 감았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아기는 할머니를 따라 팔을 흔들고 몸을 움직였다.


자라면서 유치원과 학교의 장기자랑시간은 아이의 무대가 되었다. 12살이 된 아이는 춤추면서 걷는 아이다.


악기는 하모니라고 생각한다. 피아노는 들고 다닐 수 없고 바이올린이나 첼로 역시 아무 자리 나 꺼내 들기엔 부담스럽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조화로운 악기는 기타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기타 치는 모습을 희망하면서, 아기의 손으로도 연주가 가능한 우쿨렐레를 배워주고 싶었다. 동네 주민센터에는 우쿨렐레 강좌가 없었다. 강사님이 그만두셔서  폐강이 되었다고 했다. 담당자와 통화했다. 강사님만 모셔오면 강좌가 오픈되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검색이 시작되었다. 지역의 우쿨렐레 카페에 가입을 했다. 게시글들을 잘 살펴보니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 동네 주민센터를 소개하고 강사님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오히려 강사님께서 일자리를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담당자도 좋은 강사님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셨다.


강좌 폐쇄 후 기다리고 계시던 분들이 전원 합류해 인원모집도 문제없었다. 소박한 우쿨렐레 두대를 장만했다. 성인반이었는데, 모두들 반겨주셔서 아이도 함께 다닐 수 있었다. 개국공신의 프리미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밝고 인사를 잘하는 아이는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다.

  

초등 1학년 장기자랑무대.



가족모임에서 요청을 받고 댄스타임을 즐기는 아이

5학년이 된 아이의 꿈은 댄서와 농구선수다. 그때마다 응원만 하면 된다. 자라면서 아이는 얼마든지 더 바뀔 테니까. 글모임 선정 책에서 '박경리작가의 토지'이야기를 읽었다. 아이가 '토지'를 읽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우여곡절 어렵게 '청소년토지'를 빌려서 정말 재미있는 책이라고 강조하면서 책가방에 넣어주었다. 더덕더덕 기운 낡은 책을 보는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학교의 독서시간에 집중해 읽어주길 바랐다.


며칠이 지나도 책이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있는 느낌이다. 아이가 "할머니 나 '몽실이' 다시 빌렸어"한다. "응? 재미있어서 다시 빌린 거야?" 다시 보니까 4학년 때 본 거랑 느낌이 어떤지, 새삼 보이는 게 있는지 이야기했다.


"'토지'는 재미가 없어?" 슬쩍 물어봤다.  머뭇거리던 아이가 "사실은" 하고 이야기를 꺼낸다. "재미가 없"단다. "대하소설이라 클라이맥스가 조금 지나야 나와서 그래. 1권은 이제 시작이니까 설명이 많아서 그럴 거야." 아이의 표정이 밝지 않다. 미련이 남아서 자꾸 질척거려진다. "그럼 이거 딱 반만 읽어보고 재미없으면 그만 읽자"  '청소년토지'는 '토지'의 사투리를 표준어로 고치고 내용도 순화시켜 청소년의 문화에 맞춘 책이다. 박경리 작가님이  쓰신 책은 아니다.


결국 '반을 읽어도' 재미가 없는 '청소년토지'는 퇴출이 되었다. 10권 시리즈물을 읽혀서 방대한 스토리와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아이의 전두엽에 저장하고 싶었던 내 꿈은 사라졌다. 내 표정을 읽은 아이가 눈을 맞추며 물었다. "할머니 화났어?" "아니, 나는 리나가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게 좋아." "억지로 읽어야 하는 책은 나도 절대로 싫어."  변명이 길어진다.


'스트릿우먼파이터'를 거쳐 '스트릿걸파이터'에 홀릭했다가 요즘은 '스트릿맨파이터'에 빠진 아이의 춤이 달라졌다. 힘이 생겼다. 앞으로 오조오억 번 변해갈 아이의 모든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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